교황의 급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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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 교황을 뽑는 날, 세 번째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루치아니」추기경은 옆자리에 앉은 추기경에게 귀엣말을 했다.
『나에게 위험이 닥쳐오기 시작하는구먼.』
이 말을 엿들은 또 다른 옆자리의 추기경은「루치아니」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용기를 내요. 하나님이 짐을 지워 주시면 그것을 짊어질 힘도 함께 주신다오.』
후일담으로는 거의 90표를 얻어「루치아니」는「바오로」6세의 후임 교황으로 뽑혔었다. 「요한·바오로」1세가 탄생한 것이다.
뒷날「벨기에」의 어느 추기경에게「요한·바오로」1세는『교황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걸!』하는 말을 했었다고 전한다. 그 말의 참 뜻이 무엇인지는 헤아릴 길이 없지만, 교황의 직책이 영광과 안일과 행운의 자리만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오늘의 교회처럼 어려운 질문들과 어려운 해답들 속에 휩싸여 있는 현실에서 8억 인의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일은 비록 그것의 종교의 세계일지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요한·바오로」1세는 불과 25일 동안 재위했었지만 어느새『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소박한 목자』라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는 대관식에서도 보석이 빛나는 삼관을 밀어 놓고, 조촐한 의식으로 대신했었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행사를 구경하고 싶어했던 외국의 기라성 같은 사절들에겐 실망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 양심을 사랑하는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친근감을 주었을 것이다.「요한·바오로」1세는『사회의 진정한 재산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TV화면에 비친 그의 미소는 너무 순박해 오히려 어색해 보일 정도였다.
손을 흔드는「제스처」마저도 세련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세계의 추기경들은 오늘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자는 바로 그러한「인간다운 성자」이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가「베드로」성당광장에서 군중들의 환호에 못 이겨 처음으로 가마를 탈 때도 그는 도무지 멋적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이런 교황을 보고 교회 안의 이른바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은 한결같이 만족해했었다. 그의 겸손과 도량은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급서 소식은 그에게 신선한 기대를 걸었던 전세계의 모든 마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비탄을 함께 전해 주었다. 재위 30일도 안된 교황이지만 그의 친근감과 인간적인 풍모는 10년의 밀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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