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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도덕률 파헤쳐 『판도라의 후예』|도시화하는 시골 단면 『우리동네 정씨』|주부의 의식세계 생생히… 『공항에서 만난 사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학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의 상징이며 그러한 현실에 대한분석과 종합을 거친 해석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의 표현이며 그것을 언어로 전치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문단 일각에서는 그 두 현실을 혼돈, 일부에서는 삶의 현실만을 고집함으로써 문학을 어떤 목적론에 귀결시키려하고 있고 다른 일부에서는 문학작품의 사회주의「리얼리즘」화를 경고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관점의 혼란은 자칫하면 문학적 태도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여 낡은 이념적 대립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 달의 소설 가운데 몇몇 작품은 정신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주인공들을 다루고 있다. 30년전에 입은 깊은 충격을 지니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상처가 아물지 않아 죽음으로 끝나게되는 현기영의 『순이 삼촌』(창작과 비평), 월급장이로서 주변의 불행 때문에 잠 못 이루는 하룻밤의 가난을 다루고. 있는 최창학의『잠, 오오 머리 둘 곳』(세계의 문학), 우발적인 사건에서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다가 그 해결의 길을 찾는 이범의의 『판도라의 후예』(문학사상)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현기영의 작품은 남북분단에서 야기된 감추어졌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에 있어서도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것의 정체가 잊혀질 수 없는 과거일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과거의 현재성이 아직도 열려있다는 사실을 매우 치밀하게 추구하고 있다.
최창학의 작품에서도 함께 사는 사람들의 불행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데 거기에서 야기된 불행의식이 가난에 지친 아내의 불만으로 계기 되어 불면의 밤으로 이끌어진다. 이러한 상처는 상황의 공격적인 성질 때문에 자신의 삵에 대한 반성에도 말할 경우에 해당하게된다.
반면 이범선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상처는 대단히 우발적인 것이며 동시에 상황의 공격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식의 팽대에 기인하고 있다.
결혼한 여자로서 자신의 육체를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도덕률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 도덕률을 깨뜨리는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주인공이 오히려 자신의 육체를 의식적으로 내보이게 되는 것은 상당한 「알레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같은 상처의 다양성은 삵에 있어서 <불편함>의 다양성이며 동시에 소설의 가능성이 여러 가지로 열려있음을, 그래서 문학은 어느 시대, 어느 상황 속에서도 존재해야 되고 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능성은 박완서의 작품 『공항에서 만난 사람』(문학과 지성), 『집 보기는 그렇게 끝났다』(세계의 문학), 서정인의 『물치』(문학과 지성), 이문구의 『우리동네 정씨』(문학과 지성)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주로 1인칭 소설로 한 여자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고 있는 박완서의 작품은 우리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인물의 참조를 통해서 <쌍노메베치>를 연발하는 복합적인 한 여자와 가정의 행복의 허울에 대한 인식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투정을 부리는 한 가정주부를 관련 상황 속에서 파악하게 한다. 여기에서 거칠게 행동하는 <무대소>나 교양에 억눌린 자신을 의식화시켜 증오의 「제스처」를 부리게 되는 <나>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이 작가의 뛰어난 감수성을 깨닫게 한다.
서정인의 작품은 주인공<나윤애>가 서울 생활에 눈을 뜨게 되고 그리하여 목가적 개인으로부터 도시적인 인물로, 다시 말하면 생활의 음험한 관계에 눈을 뜬 인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의 탄생 과정에 관한 천착으로서 이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에 의해 날카로운 철편처럼 감추어진 현실의 의미를 드러내준다.
이문구의 작품은 일련의 연작 중의 하나로서 현실의 모든 음모가 시골사람에게 어떤 조작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시골의 도시화와 정치학를 통한 현실에 대한 해석이며 동시에 이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는 주어진 도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김치수(외대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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