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성의껏 대화하는데도 아내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32세 직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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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대화능력평가, 이 만화에서 남편의 잘못을 찾으시오

Q: 사고 낸 아내에 해결책 얘기했더니
?왜 맘 몰라주냐?고 버럭
내가 뭘 잘못한 걸까요

A: 대화로 답답함 털어 버리는 여성에게
남성이 시시비비 가리면 갈등만 생겨
편들어주고 맞장구쳐야

A ‘오빠, 나 청량리에서 영숙이 봤어요’란 동영상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소통법이 얼마나 다른 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이런 겁니다.

 아내가 퇴근한 남편을 보자마자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아내: 오빠, 나 오늘 청량리에서 영숙이 봤어.

 남편: 같이 밥 먹었어?

 아내: 아니.

 남편: 그럼 같이 밥 먹기로 약속했어?

 아내: 아니.

 남편: 그럼 그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데.

 아내: 아니, 그냥 청량리에서 영숙이 봤다고.

 남편은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중단합니다. 아내는 머쓱하고 서운합니다.

 자, 이제 아내와 아내 친구 숙자와의 통화 내용을 한 번 볼까요.

 아내: 숙자야, 나 오늘 청량리에서 영숙이 봤어.

 숙자: 헐, 어떻게 그런 일이.

 남자와 여자는 왜 이렇게 반응에 차이를 보이는 걸까요. 그건 대화의 동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남자들은 대화에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목적지향적 소통을 하는 것이죠.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렇기에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장황하고 길면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죠. 논리적이고 함축적이며 짧을수록 좋은 대화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반면 여성들은 감성지향적 소통을 합니다. 내가 느낀 걸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성에게 대화는 상대방과의 친밀함을 높이는 수단이자 기회입니다. 아내의 대화에는 감성을 공유해 남편과의 탄탄한 정서적 연결고리를 재구축하려는 욕구가 담겨있습니다.

 목적이 다르니 필요한 대화의 양도 현저히 다릅니다. 여성에게 대화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 이 스토리를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대화 안에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고 충분한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까지 대화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에 비해 남성은 대화에 있어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다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만 추리고 추려서 얘기하는 게 남성의 대화법입니다. 그렇다보니 남성이 여성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왜 처음부터 요점을 얘기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참다 못해 대화에 끼어 들어 요점부터 말하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대화를 중단해 버리기도 하죠.

 남성은 상대가 대화를 시작할 때 뇌가 매우 논리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상대가 대화를 시작한 이유가 나에게 조언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죠. 영화 보듯 흘리며 대화를 듣지 못합니다. 모든 대화를 분석해 무언가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성은 대화, 그 자체가 대화의 목적입니다. 문제는 해결이 안돼도 됩니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상대방이 잘 들어 주면 됩니다. 정교한 솔루션 없이 “다 잘 될 꺼야”란 막연한 말로 대화가 끝나도 충분히 감성 공유가 됐다면 만족합니다. 누군가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만으로 힐링이 되니까요.

 여성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표현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날려 버리고 평온을 찾는 전략을 씁니다. 분노나 억울함 같은 부정적 감정을 상대방이 공유할 때 마음에 안식이 찾아 옵니다. 하지만 남성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을 끄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소방관 캐릭터입니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즉각적으로 없애기 위해 솔루션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의 감성적인 대화를 문자 그대로만 인식합니다. “여보, 나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어”라는 아내의 말에 “많이 힘들구나”라는 반응 대신 “어디로 며칠이나 다녀 오면 되는 건데”란 질문을 하는 거죠.

 남성은 어떨까요. 여성과 달리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디 동굴에 숨고 싶어 합니다. 힘든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성과는 반응이 정반대입니다. 세상과 뇌를 단절시켜 쉬고자 하는 거죠. 남성은 끝없이 분석하고 솔루션을 내려 하기에 자기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뇌가 더 지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르다보니 남편과 아내가 대화하다 보면 서로 답답해하거나 왜 이해를 못하느냐고 섭섭해 하다, 대화 자체가 줄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애초에 잘못 만났어”라 생각해 사랑마저 식을 수 있습니다. 종종 남자 중에도 여성형 소통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또 여성 중에도 남성형 소통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부 대화의 갈등은 매우 일반적 현상입니다.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다른 종족을 만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겁니다. 다른 여자, 다른 남자로 바꿔도 성별 차이에 따른 소통의 갈등은 여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연을 다시 한 번 보죠.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서 놀란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내가 전화한 건 놀란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위로받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더 잘못했다는 것도 아마 아내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아내가 원하는 남편의 반응은 자기 이야기를 충분이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넌 잘못이 없어”란 말을 해주는 것이었겠죠. 만약 남편이 그렇게 말했으면 “내 편이 돼줘서 고마워, 사실 내가 더 잘못했어, 일찍 들어와, 맛있는 저녁 해 놓을게”라고 대화가 깔끔하게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아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교통사고 전문가 역할을 합니다. “네가 더 잘못했는데 쌍방과실로 잘 끝냈다”면서요. 이러니 아내는 단절감을 느끼고 화를 내는 거죠.

 남편 분들, 아내와 대화하다 보면 자꾸 싸우게 되나요. 그렇다면 아내 말을 이어서 받아주라고 권합니다,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는 소통법이죠. 아내가 “나 청량리에서 영숙이 봤어”라고 하면 “정말 영숙이를 봤어?”라고 끝말을 이어서 받아 주는 겁니다. “나 접촉 사고 났어”라고 한다면 “접촉 사고가 났다고?”라고 큰 소리를 내서 호응을 하는 겁니다.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오은지 작가는 2000년 대원 공모전에서 『하숙생』으로 가작을 받으며 데뷔. 2010년 『거상 김만덕』(네이버), 2011년 『리버트 디디』(툰도시), 2013년 『복사골 연극부』(네이트) 등 연재. 감성을 자극하는 순정만화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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