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 불가능한 행정명령 불응해도 처벌은 못한다"|대법원판례 실정 무시한 행정명령 남발에 경종|설계만 20일 걸리는 소방시설|15일기간주고 연이어 독촉장|대구 서문시장 건물주에 무죄선고 원심확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실현 불가능한 행정명령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해서 처벌할수없다는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형사부는 9일 대구서문시장 제2지구 2층상가 대표 박종옥 피고인(36·경북대구시남구봉덕동689)에 대한 소방법위반사건 상고심선고공판에서 이같이 판시, 박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례는 최근 각급 기관에서 실정을 무시하고 주민들에게 각종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사례가 많은 점에 비추어 큰 경종이 되고있다.
박피고인은 76년9월29일 대구소방서장으로부터 『76년10월13일까지 대구서문시장의 층마다 「스프링쿨러」와 방염 처리설비를 갖추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이행치 않았고 또 그해 10월18일 『10월30일까지 이행하라』는 독촉을 받고도 기한내에 완결치 않았다하여 소방법위반협의로 고발되어 기소됐었다.
1심인 대구지법은 77년7월8일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 벌금5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박피고인은 『행정명령을 받고 공사를 서울 영진공사에 맡겨 설계하는데만 20일이 걸리는데 1차 명령때 15일, 2차때 12일의 기한을 주고 공사를 마치도록 요구한것은 무리』라고 주장하며 76년11월l5일 공사금 6천만원·77년3윌3l일 준공예정으로 공사계약을 맺은 사실을 들어 항소, 지난2월6일 대구지법 항소부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었다.
박씨는 시장의 경우 많은 사람이 드나들기 때문에 일반의 경우보다 공사기간이 더 있어야하는데 소방서의 행정명령은 이런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문에서▲그같은 소방시설은 설계하는 데만 20일이 소요되며▲대구에는 그런 설계를 맡을 업자도 없고▲그 소방시설공사의 공사비가 6천만원·공사기간은 4개월반이나 된다고 말하고 『이같은 시설을 12일 또는 15일정도의 단기간에 이행하라는 것은 불가능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같이 실현 불가능한 명령을 이행치 않은 것은 정당한 이유가 된다』고 무죄이유를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