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功名垂竹帛[공명수죽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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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竹)은 대나무요 백(帛)은 비단이다. 옛날엔 기록을 대나무 쪽이나 비단 폭에 해 두었기 때문에 죽백(竹帛)은 곧 기록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공명(功名)을 죽백에 드리운다(垂)는 말은 큰 공을 세워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긴다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등우는 소년 시절 장안으로 가서 공부를 했는데 그때 역시 장안에서 공부하던 유수(劉秀)를 만나게 됐다. 유수는 훗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된 인물이다. 등우는 유수의 비범함에 끌렸고 둘은 다정하게 지내다 몇 년 뒤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세상은 난세로 새로 신(新)이란 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때 한나라 왕실의 후예로 반란군 대장에 오른 유현(劉玄)이 왕망을 몰아내고 황제로 추대됐다. 그이가 곧 갱시제(更始帝)다. 사람들은 등우를 갱시제에게 천거했으나 등우는 사양하고 갱시제를 섬기지 않았다. 갱시제의 인품이 하찮다고 봤기 때문이다.

얼마 후 유수가 황하(黃河) 이북 땅을 평정하러 떠났다는 말을 듣자 등우는 유수를 찾아갔다. 유수는 반가웠지만 내심 등우가 벼슬 하나 얻으려는 생각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멀리 그를 찾아온 이유를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등우가 분명하게 말했다. “다만 명공(明公)의 위엄과 덕망이 사해에 더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작은 힘이나마 바쳐 공명을 죽백에 드리우고자 합니다(但願明公威德加於四海 禹得效其尺寸 垂功名於竹帛矣).”

이 말을 듣고 유수는 등우를 곁에 두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유수가 자신의 세력이 작음을 한탄할 때 등우는 “천하를 손에 넣는 데는 덕(德)이 두터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영토의 크고 작음은 문제가 아닙니다”와 같은 조언으로 유수의 힘을 돋우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유수는 광무제로서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랐고 이를 도왔던 등우의 공명은 죽백에 드리워져 널리 후세에 전하게 됐다. 공명수죽백은 이름이 천 년 동안 전해진다는 명전천추(名傳千秋)와 상통한다.

이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지방선거가 끝나 여러 교육감과 지방자치단체를 위해 일할 이들이 뽑혔다. 부디 등우와 같이 공명수죽백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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