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종교 … 베를린서 '벽 허물기'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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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 종교를 위한 공간 ‘하우스 오브 원’을 위해 손잡은 종교 지도자들. 왼쪽부터 유대교의 토비아 벤-코린 랍비, 이슬람교의 카디르 산치 이맘, 개신교의 그레고르 혼버그 목사. [‘하우스 오브 원’ 홈페이지]
2016년 착공하는 베를린의 ‘하우스 오브 원’ 조감도. 한 지붕 안에 교회·시나고그·모스크가 들어선다.

화해와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 독일 베를린이 종교 간 화합을 위한 실험을 한다. 개신교·유대교·이슬람교가 한 지붕 아래 기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하우스 오브 원(The House of One)’ 프로젝트다. 종교의 벽을 허무는 ‘하나의 집’ 속엔 개신교의 교회, 유대교의 시나고그,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함께 자리 잡을 예정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종교시설은 동베를린 지역 페트리플라츠에 세워진다.

 혁신적인 ‘종교 실험’은 세 종교의 지도자가 손을 잡으면서 가능해졌다. 독일 복음교회의 그레고르 혼버그 목사, 베를린 유대인 커뮤니티의 토비아 벤-코린 랍비, 터키인들이 중심인 수니파 조직의 카디르 산치 이맘이다.

 아이디어는 혼버그 목사에게서 나왔다. 페트리플라츠에 새로운 교회 건설을 앞둔 그가 “그냥 교회를 짓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페트리플라츠엔 1200년대 베를린이 탄생했을 때부터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964년 동독 정부가 남아 있던 건물마저 허물면서 땅은 빈터가 돼버렸다. 2006~2008년 이 지역에선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1200년대 교회 유적이 발견되면서 페트리플라츠의 역사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는 교구와 상의해 새로운 교회를 짓기로 했다. 이에 혼버그 목사는 “처음 베를린이 만들어진 장소에는 가장 미래지향적인 것이 세워져야 한다”며 새로운 종교시설을 제안했다. 다문화·다종교 사회를 베를린의 미래로 본 것이다.

 혼버그 목사의 제안에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유대교 측은 “한때 유대인을 말살시키려 했던 도시에서 최초로 새로운 종교 시설이 생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베를린은 (우리에게) 상처이면서 동시에 기적이다”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이슬람교 측은 거절했다. 유대교와 손 잡는 게 마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를린 내 여러 무슬림 집단과 접촉한 끝에 ‘문화 간 대화를 위한 포럼’이라는 단체가 합류했다. 터키인들이 중심이 된 수니파 조직이다. 산치 이맘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날려 버리고 서로 다른 믿음과 문화를 가진 이들이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미래엔 다양성이 곧 표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우스 오브 원’ 안에는 각 종교의 예배당들의 중심에 공동 공간이 들어선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쿠엔 말베치는 “세 종교에서 (건축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요구하지만 방해되지는 않는다”며 “믿음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인 만큼 이런 과정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엔 건축 비용 모금을 위한 웹사이트(www.house-of-one.org)를 열었다. 완공까지 예상되는 비용은 4350만 유로(약 605억원)다. 벽돌 한 장에 10유로씩, 벽돌 435만 장을 기부받는 식으로 모금을 진행 중이다. 일단 내년까지 1000만 유로 모금을 목표로 하고 2016년 착공한 뒤 4년 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혼버그 목사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도시에서 서로 다른 믿음이 평화롭게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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