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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고 못 배우고 간 자식 한 맺혀"|1억원을 장학금으로 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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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주「욕장이 할머니」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충북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 놓았다.
욕장이 할머니 김유례씨(69·청주시 남문로 2가55)로부터 장학금을 전달받은 정범모 충북대총장은 김씨를『충북대 할머니』로 추대하고「김유례 장학회」를 만들어 79학년도부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키로 했다.
충북 김천군 김천읍 읍내리에서 유복녀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자신보다 13세나 많은 같은 마을 이오철씨와 14세 때 결혼했으나 29세 때 남편과 사별해 청상과부가 돼버렸다.
남편 이씨가 김 할머니 한테 남기고 간 것은 단간 초가집과 3남매-.
청상과부가 3남매를 기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했다.
날품팔이로 나선 김 할머니는 농사철에는 농군으로 모심기도하고 김도 맺으며 타작도 했다. 눈보라치는 겨울엔 얼음을 깨고 동네 삯빨래를 도맡아 해치웠다. 삯으로 끼니를 이으면서도 푼푼이 돈을 모았다.
얼마간의 돈을 모은 김 할머니는 장사를 해야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도청이 있는 지주로 진출하기로 결심, 3남매를 이끌고 나섰다.
청주시내 영동에 전 셋방을 얻어 빈대떡장사를 시작했다.
막걸리에 빈대떡을 곁들여 손님들에게 내놓자 먹을 만하다는 소문이나 영업은 그런대로 잘돼 나갔다. 그러나 뜻밖에 3남매가 한꺼번에 괴질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빈대떡 장사 20년에 돈과 익살스런 욕지거리가 몸에 베었다. 모진 세파를 살다보니 자연히 욕지거리가 입버릇이 됐으나 악의가 없고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 익살스런 욕지거리였다.
자유당초기에 할머니는 빈대떡장사를 청산, 설렁탕 집을 차렸다.
『그 집에서 설렁탕을 먹으려면 그 할머니의 욕도 한마디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맛이 일품인 설렁탕과 함께 청주의 욕쟁이 할머니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옥호없는 설렁탕 집을 손님들은「욕장이집」으로 불렀다.
설렁탕을 먹으러온 모 청주시장에게도 면전에서 대뜸『그 참 오랜만에 왔네』하며 반기기도 했고 자유당에 모 장관이 청주에 왔던 길에 할머니의 설렁탕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다가『건방지다』는 욕(?)을 먹고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할머니는 인정이 많아 막노동자들이 찾아와 설렁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사흘 굶은×같이 우라지게 잘 퍼먹네』하면서 밥한 그릇과 덧국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는 것.
64년 설렁탕 집을 그만둔 할머니는 남문로2가 중앙여관을 인수,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충북대에서 흣한 장학금 1억원은 이 여관건물 (싯가5천만원)과 현금 5천만원.
그 동안 김 할머니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 건립 비도 내놓았으며 불우 학생들에게 학비를 틈틈이 주기도 했다.
고희(고희)를 눈 앞에 둔 할머니는 못 먹고 못 배우고 간 자식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1억원의 장학기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정범모 충북대총장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인재를 위해 장학금을 쓰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청주=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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