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7)제58화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50년대"문예"지 전후-조광현(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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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학 심포지엄>
전국순회 문학강연회는 60년을 전후해서부터 시작되어 매년 빼놓지 않고 실시돼 오고 있으며 문예창작 실기강좌는 서울에서만 세 차례 열었었다.
현대문학사가 주최하는 지방순회 문학강연회도 얼마 전까지 매년 열리고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문인협회·「펜·클럽」같은 단체에서도 간혹 그러한 행사를 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때는 1년에도 몇 차례씩 지방을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한 일들로 인해서 지방의 여러 명승지와 사찰들을 구경할 기회를 갖게된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고 특히 가고 오고 하는 사이에 있었던 문우들과의 여행은 모두가 즐거운 추억들로 남아 있다.
문인협회 등 문학단체의 지방문학 강연회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것이 한참 성행할 때까지도 문학「세미나」또는 문학「심포지엄」같은 것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문단의 커다란 연례적 행사로서 시작된 것은 내가 문인협회 이사장직을 맡은 73년부터의 일이었다. 그 해의 여름에「아카데미·하우스」에서 l백여명의 문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2박3일의 문학「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이것이 본격적인「심포지엄」의 형태를 갖춘 최초의 문학「심포지엄」이었다. 그해 가을에는 역시 2박3일의 일정으로 속리산 관광「호텔」 에서 문학「심포지엄」이 열렸다.
지금도 문협에서는 매년 1. 2회 이런 모임을 갖고 있지만 문협에서 시작한 후 여류 문인협회·시인협회 같은데서도 이런 행사를 갖게 되어 지금 와서는 매년 여러 종류의「세미나」나「심포지엄」이 우리문단에서 열리고 있다. 이런 행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이나 여론들도 있지만 문인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침식을 같이하고 가고 오고 하는 여정을 같이 즐긴다는 것은 문단의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보이지 않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주제를 놓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보는「세미나」자체의 의미도 물론 중요한 것이겠지만 술을 같이 마신다는 것이 사회생활에 중요한 것처럼 문인들의 이런 모임도 중요한 것으로 느껴졌다.
내가 문협의 책임을 맡은 4년 동안 내가 해놓은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총회 때마다 생기는 임원선거에서 오는 부작용과 폐단을 가능한대로 줄여보기 위해서 임원을 직접선거에서 간접선거로 그 제도를 나는 바꾸어놓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일부의 말썽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조처에 대해서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미국 대통령도 간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데 아무런 권력도 없을뿐 아니라 그것이 자랑스러운 명예도 별로 되지 않는 문협의 임원선출을 사회를 요란스럽게 하고 문단의 우호를 해치는 분위기까지 조성해 가면서 직접선거를 꼭 해야될 이유는 매우 박약한 것이 아닐 수 없었을 뿐 아니라 1천명이 훨씬 넘는 회원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투표와 개표에만 5시간이장이나 걸리는 일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이었다.
4년 동안 나는 무력하고 무능한 문협의 이사장이었지만 나를 도와준 많은 회원들과 임원들의 혁명에 대해서 나는 깊이 감사하고 있다. 내가 그 책임을 맡은 이후 상임이사라는 가장 어려운 직책을 나의 간청에 의해서 맡아준 이인석 김윤성 이형기제씨를 비롯해서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수고를 하고있는 오학영 사무국장의 도움이 컸었다. 특히 여러번 그만두겠다고 해온 이인우 씨가 끝까지 나와 함께 그 소임을 다해 준데 대해서 나는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인석 씨의 공정하고 사리 밝은 업무수행은 문협의 공익적 성격을 확립시켜 놓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직책상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기 쉬운 사무국장의 어려운 업무를 오랫동안 감당할 수 있었던 오학영 군의 인내와 그 능력에 대해서도 위로와 사의를 표해 두어야 하는 것도 나의 당연한 의리일 것이다.
내가 문협의 사무를 서정주씨에게 인계하는 자리에서 부이사장으로서 나를 도와주었던 이동주 씨가 나에게 조그마한 기념품을 하나 주었다. 이것은 내가 가졌던 공직으로 인하여 내가 받은 유일한 기념품이 되었다. 그 동안의 나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이동주 씨의 우정을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고맙게 기억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나에게 무슨 노고가 있었겠는가. 노고가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가 나를 도와주었던 여러분들의 희생이 아니었겠는가. 이동주 씨는 지금 이사장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지만 그의 노고에 나의 그것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쩌면 그의 노고가 더할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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