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분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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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욕·타임스」의 「윌리엄·새파이어」는 「닉슨」백악관이라는 난파선에서 구사일생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닉슨」의 「스피치·라이터」였지만 「홀드먼」과 「엘리크먼」이 이루는 백악관 참모진의 주류에 끼지 못한 덕택에 「워터게이트」의 수라장에서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77년 봄, 공화당은 박동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78년 중간선거의 득표무기로 삼으려는 「춘계공세」라는 것을 폈다.
코끼리로 상징되는 공화당은 민주당 행정부와 의회가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여론을 선동했다.
거기 가담하여 가장 신명나게 「카터」행정부·민주당의회, 그리고 한국정부를 난타하고 있는 것이 「새파이어」다. 그가 쓰는 「칼럼」은 공화당의 선거구호 같다.
그는 「오닐」하원의장이 「재워스키」와 야합하여 박동선 사건을 깔아뭉개는 「쇼」를 연출하고 있다고 규탄하다가 그만 신명이 지나쳐 버린 것 같다. 그는 7월20일의「칼럼」에서는 한국정부가 김동조씨의 증언에 동의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한달 안에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새파이어」의 논리는 기발했다. 『의회에 대한 한국의 전복기도는 미국의 제도에 대한 침략이다.』이건 「프레이저」의 억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로비」활동이 침략행위라면 미국의 제도는 한국의 「침략군」이 도착하기 4반세기 전에 벌써 자유중국이나 「이스라엘」손에 거덜이 났을 것이다.
공화당은 박동선 사건을 11월 선거까지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런데 사건은 마무리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파이어」의 초조한 심사가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파적인 이익을 위해 한국의 안보상의 이익은 물론이고 미국의 국가이익까지도 희생하라는 거다. 「닉슨」에 대한 「언론의 횡포」를 통탄하던 「새파이어」가 한국을 상대로 「펜의 폭행」을 가하는 것은 미국정치의 「아이러니」다. <김영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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