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비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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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정쇄신 작업이 안보적 차원에서 개시된지도 벌써 3년 반. 그러나 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한 부조리의 실상은 정부의 통계로나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감각으로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서정쇄신 초기에는 강력한 처벌에 의한 충격효과가 상당히 컸지만 세월의 경과는 이러한 충격효과도 적지 아니 둔화시킨 것 같다.
이제는 눈에 띄는 부조리가 줄어든 대신 부정의 형태가 더욱 음성화·은밀 화되고 있다.
최근 국민들의 커다란 분노와 물의를 일으킨「아파트」특혜 사건만 해도 이런 음성적 부패구조의 일각이 드러난 데 불과하다.
현금화 될 수 있는 거액의「프리미엄」이 붙은「아파트」특혜 분양을 수많은 공무원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았다는 사실은 이 정도의 선심 수수가 관료사회에 일상화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사실 부조리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알려면 더도 말고 영업하는 사람 한, 두 명의 솔직한 얘기만 들어보면 될 정도다. 감독·단속·세무관서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부조리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정부 당국의 통계를 봐도 비위로 징계처분을 당한 공무원의 비율은 서정쇄신 이전보다 그 이후가 연 l·47%에서 1·8%로 늘었다.
물론 그러한 징계 비율의 증대는 적발 및 처벌의 엄격 화에 연유한 것이기도 하나 아뭏든 뿌리 깊은 부조리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서정쇄신 운동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사회에서 부조리가 근절되지 않는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학적으로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으나, 행정적 차원으로만 문제를 국한하면 두 가지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우선 서정쇄신 운동이 요구하는 공무원의 행동기준과 처벌기준에 일관성이 적다는 점이다.
서정쇄신 초기에는 공무원이 국민으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당사자는 파면, 직 상급자는 1차로 경고 또는 직위 해제, 2차로 직위해제 또는 직권면직, 차 상급자는 1차로 경고 2차로 직위해제를 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실제로 창구에서 2천 원을 받은 법원말단 사무직원이 파면과 동시에 구속되고 직 상급자가 해임, 차 상급자가 인사조치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 크나 큰「프리미엄」이 붙는「아파트」특혜분양을 받은 공무원들의 경우는「투기목적」이 아닌 한 경고 조치로 끝났다.
공무원의 비위에 대한 처벌이 강경 일변도여서도, 관용 일변도여서도 곤란하지만 이렇게 기준자체가 갈팡질팡 이어서는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점 납득할 만한 해명과 기준 제시가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부조리 근절을 저해하는 기본 원인으로 공무원의 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의 생활마저 보장해 주지 않고 공무원에게 봉사 자세와 청렴을 요구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무리다.
공무원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사회 생활의 체면에 구애되는 사회의 평균인을 크게 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서정쇄신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공무의 정신자세 확립과 사회의 도덕적 기준 회복 노력과 함께 공무원의 생활급도 꼭 보장되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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