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돌 제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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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것이나 새것은 좋다. 그러나 정말 멋은 조금은 낡았을 때 나타난다.
머리카락도 갓 이발했을 때보다는 2, 3일 지났을 때에 멋이 난다. 옷도 마찬가지다. 갓 맞춰 입은 옷은 아무리 멋쟁이라 해도 당장에는 어색해 보인다.「블루진」이 좋은 것은 여러 번 빨아 입을수록 멋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값비싼「진」은 진 솔 때도 한두 번 빨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제헌절 30돌을 맞는다. 그만하면 제법 손때도 묻어 몸에도 익을 만한 연륜이다. 멋도 날만 한 때가 됐다.
법은 손때가 묻을수록 윤이 난다. 가꾸고, 다지고, 덧칠하고 하는 동안에 몸에 딱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꼭 집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설계를 잘하고, 시공을 잘했다 해도 새집이 집다 와지는 것은 역시 2, 3년 후부터다.
마루도 반드레해지고, 문짝들이 매끄러워지고,「페인트」색깔이 알맞게 가라앉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랜 법을 자랑하는 것이 영국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법이 적은 것도 영국이다. 여기서는 성문법보다도 관습법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4백년전의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던 것도 많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은 조금도 불편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꼭「버킹검」궁전이며「런던」탑을 지키는 경호 병들의 교체의식과도 같다. 2차대전의 극심한 폭격 중에서도 그 16세기 때부터의 의식은 중단되지 않았다.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어도 별탈이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나 옷도 잘 가꿔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법도 마찬가지다.
비록 처음에는 누더기 같은 옷이라도 잘 꿰매고 때우면 제법 입을 만 해진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함부로 입어 버리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뀌어진다. 의식도 많이 달라진다. 그러나 헌법의 정신마저 달라질 수는 없다.
헌법을 제정했던 본래의 정신을 잘 지켜 나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문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런 헌법의 제1조를 작성하면서 당초의 기초 자들은 얼마나 흥분했었던가.
그것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의 국민은 또 얼마나 감격했던가.
모든 게 엊그제의 일 같기만 하다. 그러나 어느새 30년이 흐른 것이다. 그 동안 달라진 것도 많다.
지금 우리는 30년의 역사를 자랑만 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다져 나갔으며 앞으로 더 곱게 키워 나가겠다고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가졌었던가를 점검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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