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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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독에서는 대학 입학원서 접수마감이 7월 중순이다. 합격자 발표는 9월말에 있다.
그러니까 서독의 대학 입학 희망자들에게는 초조하고도 지루한 여름이 된다.
그러나 서독에서는 입학시험이 따로 없다. 그저 고등학교의 내신서에 모든 게 달려있다.
서독의 고교에서는 마지막 2년간의 성적과 최종적으로 고교마다 실시하는 「아비투아」 시험결과를 평가한 「아비투아」 성적표를 중앙선고사무국에 보낸다. 그러면 여기서 각 선고 학교마다 성적 상위자를 정원순대로 자른다.
그러나 지난여름에 「키르」 교육대학의 「슐레터」 교수가 이 내신서가 그 작성교사들의 뒤죽 박죽한 채점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7년간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서독의 교육계로선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슐레터」 교수가 지적한 예에는 이런 게 있었다.
『감격과 열광의 차이는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를 어느 고교생에게 냈다. 그리고 그 학생의 회답을 10명의 교사에게 채점시켜봤다.
그러자 같은 답안을 가지고 A를 준 교사가 1명, 평점 C가 4명, D가 3명, 불합격점을 준 교사가 2명이었다.
비교적 객관적인 대학시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똑같은 답안에 대한 채점이 교사에 따라 세 가지로 다르게 나왔다.
그 뿐 아니라 담임선생이 자기 반 학생의 성적을 매길 때에는 「일진」에 따라 오르내리기가 일쑤였다는 것이다.
해마다 말썽스러운 대학입시가 79년부터는 고교의 내신서 성적을 반영시키기로 했다고 문교당국이 발표했다.
우선은 10%를, 80연대 후반부터는 50%이상으로 반영시키도록 조심스레 바꿔 나가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서독처럼 내신서 위주의 입학제도로 바꿔질 모양이다. 물론 예비시험도 없어지고 시험횟수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입시과열도 해소된다. 고교 성적의 비중이 커지면 그만큼 과외 수업 편중의 병폐도 없어진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또 내신서가 문제된다. 「슐레터」 교수는 제안하기를 『교사도 성적평가의 방법에 대하여 충분한 훈련을 받고 과목마다 과학적·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확립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또 불안이 가셔지지는 않는다. 치맛바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고교가 평준화된다해도 애교심이나 경쟁심마저 죽일 수는 없다.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은 합격자를 내겠다는 욕심이 내신서의 객관성을 흐려뜨릴 수도 있다. 교사들의 양식만을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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