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화」와「세속화」는 구별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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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래 일부 평론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른바 문학의 상업화 혹은 대중화에 대한 논의에는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근간 중앙일보에 나타난 몇몇 평론가·작가의 글, 그리고 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문학의 상업화 여부에 관한 것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까닭은 그러한 반응이 문학과 독자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 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이 독자와 가까워졌다, 즉 독자가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다 하는 현상은 문화의 상업화로 볼 경우 그것을 과연 부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문제가 있다. 근본적으로 독자가 많다는 그 현상 하나만으로 그것을 대중화로 보고 대중화=상업화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대중화(Popularization)와 세속화(Secularization)의 차이점에 대한 분명한 이해로부터 이 문제는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소위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나「속화」했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얼마나「대중화」했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 행위는 필연적으로 대중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출발될 수 없다. 문학이 건강하게 대중화하기를 거부하고 지나치게 귀족화 해버리거나 고고 화 해 버릴 때 문학의 존재이유는 증발된다.
오늘날 흔히「대중」이라고 하면「저속하고 정도가 낮은」「순수하지 못한」따위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또 어떤 작품이 대중에 인기가 있다고 해서 불순하다고 보는 것은 예술의 순수성에 접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인기란 대중의 높고 보편적인 지지도를 의미한다. 다수의 보편적인 지지를 잘못되고 저속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병적인 자세다.
되풀이하거니와 문제는 작품이 얼마나「세속화」해 버렸느냐에 있다고 본다. 한 편의 소설이나 시가 돼지나 일부 계층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또 작자 개인의 만족과 가치를 위해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요컨대 대중은 작품을 촉진시키고 아울러 명멸시킨다. 이런 상대적인 관계에서 문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화해야 한다.
다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대중화의 정도를 넘어서서 문학 외적인 요소와 타협하거나 아부하면서 대승의 요구를 쫓아가는 이른바「속화」현상을 일으킬 때, 우리는 이점을 우려해야 하며 이점을 지적해야 한다. 꼭 대중화를 탈 순수적인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곧 오늘날 작품이 그만큼 속화되어 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또 하나, 문학의 상업성이 비 순수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속화된 작품을 양산시키고 이것을 속되게 말아먹는 변조된 상업성(이점에서는 오늘날 인쇄「미디어」를 악용하여 독자를 오도하면서까지 장사를 하는 많은 문학 상인들의 책임이 크다)이 비관을 받아야한다.
상업행위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상도덕이 무너질 때가 문제인 것이다. 건전한 의미에서 작품은 널리 대중화합이 바람직하며, 오늘처럼 극히 분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작품은 보다 적극적으로 상업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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