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선집』 5권 내놓은 김소운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달을 읊고 물을 노래할 만큼 한가로운 풍류가 내게는 없습니다.』 고희를 넘긴 노 시인이자 수필가 김소운씨가 아직도 원고지 더미 속에 파묻혀 고뇌하고 땀 흘리는 주제는 인생과 민족의 문제다. 1929년 일본 암파 서점에서 『조선 민요집』을 낼 때부터 그랬고 그 걸음으로 50년만에 지금 『김소운 수필선집』 5권 (아성 출판사 간·국판·각 400여「페이지」)을 내놓았다.
『글은 내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쉬우면서도 해야할 말에는 「액선트」를 주어야 하고…. 인생은 결국 진실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진실을 쉽게 그렇게 표현하고 알아듣고 하는 것은 아닌가봐요. 오히려 「진실 비슷한 것」「진실과 닮은 것」이 알기 쉽고 잘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생의 참뜻과 올바른 필을 밝혀주고 우리 어머니가 문둥이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는 끈적끈적한 조국애로 줄기차게 써 온 그의 글에 사람들은 「감치는 맛」「은근한 멋」「점잖은 재미」를 느끼는지 모른다.
『내 딴에는 민족의 대변자 구실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이 14년간 조국을 떠나 있게 했고 일본어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이완용 사촌쯤으로 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 그렇지만 이제 「나이 덕」을 보는지 그런 오해는 점점 사라져 간다고 쓴웃음을 띤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완벽한 한일·일한 사전을 만들어 놓고 싶어요. 이 일은 내게 맡겨진 마지막 일이라는 느낌까지 듭니다.』
마치 영국의 문호 「버나드·쇼」가 하찮은 유산을 두고 『내 유산의 4분의 1은 영어를 위해 쓰라』는 유언에서처럼 글씨의 말속에는 언어에 대한 노 문인의 집념이 엄숙할 이만큼 서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