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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것만 먹고 살래" 까다로운 녀석들 멸종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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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흰노랑 날개에 붉은 점이 뚜렷한 붉은점모시나비. 강원도 삼척이나 경북 의성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되는 바람에 멸종위기종 Ⅱ급으로 지정돼 있다.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붉은 점 탓인지 일본인 수집가들이 유독 이 나비를 탐낸다. 1980년대 초 일본인들이 직접 한국에 들어와 몰래 채집해 갔고, 10년 전에도 한국인을 앞세워 채집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복원을 위해 2011년부터 인공 증식한 나비들을 매년 방사해 왔다. 올해도 오는 10일 삼척시 하장면 일대에 방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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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점모시나비가 줄어든 건 까다로운 식성 탓이 크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기린초(麒麟草)라는 식물의 잎만 먹는다. 기린초는 산불이 난 곳이나 화전(火田)처럼 햇빛을 가리는 나무·풀이 없는 데서만 자란다. 산림녹화로 숲이 우거지면서 기린초 서식지가 줄었고 덩달아 붉은점모시나비도 줄었다.

 식물 중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게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Ⅰ급인 광릉요강꽃이다. 난초과(科) 식물로 5월 중순 꽃을 피운다. 덕유산 몇 곳을 비롯해 전국 10여 곳에서 자생하지만 인공재배는 안 된다. 너무 그늘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햇빛이 너무 잘 들지도 않는 돌밭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먼지만큼 작은 광릉요강꽃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려면 땅속 곰팡이와 공생(共生)관계를 맺어야 한다. 가는 뿌리 같은 역할을 하는 곰팡이는 토양에서 미네랄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광릉요강꽃은 광합성으로 생산한 탄수화물을 곰팡이에게 준다. 문제는 광릉요강꽃이 흔한 곰팡이를 파트너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곰팡이가 광릉요강꽃의 파트너인지를 찾는 것과 함께 기존 서식지와 비슷한 곳을 찾아내 파종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자연계에는 이처럼 까다로운 번식 습관 탓에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 세계에 2000여 마리밖에 없다는 저어새는 대부분 비무장지대(DMZ) 인근 서해 무인도에서만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땅바닥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사람이나 다른 포유동물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라야 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물 Ⅰ급인 흰수마자는 물이 깨끗하고 바닥에 모래가 깔린 여울에 사는 민물고기다. 모래알이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야 한다. 겁 많은 흰수마자가 언제든 모래 속에 숨기 위해서다. 강바닥 환경이 달라지면 자칫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구 전체로 봐도 대나무 잎만 먹는 자이언트 판다,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 코알라, 크릴새우만 먹는 남극의 흰수염고래 등 편식이 심한 것들이 많다. 대나무가 천지로 널린 곳에서 살아온 자이언트 판다는 아예 대나무를 잘 잡고, 잎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앞발과 이빨이 진화했다.

 인간사뿐만 아니라 생태계에서도 ‘좋은 일이 영원히 좋지만은 않다’는 얘기가 통하는 듯싶다. 개발로 서식지가 훼손되면 동식물이 누리던 낙원의 행복이 일순간 사라지고 위기만 남는다.

 까다로운 녀석들이라고 해서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생태계 자체가 다양성을 잃고 변화에 취약해진다. 까다로운 종을 보호하다 보면 덩달아 생태계가 풍부해지고 더 건강해지며, 그 혜택이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바로 ‘깃대종(Flagship Species)’ 이론의 지혜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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