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자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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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화신용정책을 중앙은행에 맡겨 자율적으로 혼용케 하겠다는 재무당국의 방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바이다.
한은법상 중앙은행에서 당연히 담당하기로 되어있는 통화신용정책을 이제 새삼스럽게 중앙은행에 이관한다는 것이 다소 이상스럽게 들리지만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존중, 통화가치의안정과 은행신용제도의 건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재량권을 높이겠다는 방향은 지극히 옳다고 판단된다.
특히 신병현 한은 총재의 취임과 때를 같이하여 이런 방침이 천명되었다는데 대해 의의를 부여하고 싶으며 이것이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그동안의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운용과정에 있어 중앙은행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의욕적인 경제개발을 위하여 종래 모든 것을 정부주도아래 추진되어왔다. 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형평이나 안정보다 양적 성장에 정책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정책기조에선 중앙은행의 견제기능이 거추장스러울 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히 중앙은행은 외면되고 정부주도에 의한 의욕적 개발이 강행되는 것이다.
물론 경제개발을 서두르기 위해선 능률과 일사불란이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견제기능이 없을 때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실감했다.
때문에 의욕적인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중앙은행의 견제기능이 더욱 요청되고 거기에 바로 중앙은행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다. 성장을 추구하려는 정부와 안정을 고집하는 중앙은행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도 특히 아쉬운건 안정의 중요성에 대한 큰 소리라 할 수 있다.
거의 모두가 성장을 예찬하고 또 그것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견제가 강하지 않으면 국민경제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최근의 통화팽창이나 안정기반의 동요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방침만으로 사태가 호전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안정보다 성장으로 크게 경사되어 있는 전반적 분위기가 더 문제다.
우선 정부 내에서조차 안정기조의 견지에 대한「컨센서스」가 되어있지 못하면서 어떻게 중앙은행의 힘으로 그 도도한 성장의욕과「인플레」분위기를 막을 것인가.
중앙은행의 자율성이 완전히 보강되어있다 해도 그것이 작용 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미미하다.
현재의 통화조출의 주경로가 중앙은행의 재량밖인 재정·해외부문이고 금융도 상당부문을 정부가 직접관장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나 현실 면에서 중앙은행이 종합적인 통화신용정책을 펼칠 수 없는 여건에 있다. 때문에 이런 근본적인 여건은 개혁되지 않은 채 이제까지 재무부에서 관장하던 각 은행별 여신한도를 중앙은행이 운용한다하여 과잉통화를 줄이고 안정기조를 굳히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다.
따라서 이번 재무당국의 조처가 실효를 거두려면 그런 근본적인 여건의 점진적 개선과 아울러 이를 담당할 중앙은행 당국이 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투지가 있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귀추를 주목하면서 중앙은행의 분발을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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