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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多의 섬에 예술이 살포시 제주는 지금 4多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저지예술인마을. 각계 예술가들이 쉬면서, 놀면서,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을 통해 제주를 예술 허브로 만들려 했던 고 신철주 당시 북제주군 군수의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인터넷·전기·상하수도 시설이 지하에 매설된 전봇대 없는 마을로 동간 사이가 나무와 숲으로 넉넉하다. 현재 서예가 현병찬, 종이연구가 김경, 서양화가 박서보, ‘TV 진품명품’의 양의숙 감정위원 등 15개 장르 예술가들의 집 28개 동이 들어서 있다. 지난 4월 19일에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미술관 기공식도 화려하게 열렸다. 2007년 이곳에 문을 연 제주현대미술관 인근에는 중국 화가 펑정제(俸正杰·46) 스튜디오가 지난해 10월 들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유일한 외국인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이기도 하다.

지난달 24일 이곳을 특별한 중국 손님들이 찾았다. 펑정제와 그의 친구인 ‘유리인간’ 시리즈의 화가 우밍중(武明中·51), 중국 쓰촨(四川)의 청두난정(成都藍頂)미술관 김옌(金延) 관장과 미술관 관계자, 난정창의산업 주식회사 위안예(袁野) 부이사장이었다. 펑정제 스튜디오 설립의 숨은 주역이었던 박철희(39) 베이징 갤러리문 대표가 안내를 맡았다. 제주의 청명한 날씨가 이들을 반겼다.

펑정제 스튜디오 내부

“제주가 고향 같다”는 중국 화가 펑정제
펑정제(위 사진)는 베이징·쓰촨·싱가포르, 그리고 제주에 스튜디오가 있다. 제주의 경우 대지 200평, 건물 70평으로 가장 작은 규모다. 지난해 가을 찾았을 때보다 훨씬 정리가 잘 돼 있었다. 의자 컬렉터로 유명한 사보(임상봉)의 빈티지 의자들이 분위기를 돋웠다. 펑정제의 트레이트 컬러인 초록과 분홍의 조합은 여전했다(그는 운동화도 한쪽은 초록, 다른 한쪽은 분홍색으로 신는다). 쿠바 화가 친구가 선물했다는 시가를 물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어떻게 지냈나.
“4월 23일부터 두 달간 시안(西安) 미술관에서 동생과 함께 2인전을 시작했다. 민병훈 감독의 예술영화 ‘펑정제는 펑정제다’의 촬영을 마쳤다. 가을까지 편집을 마무리하고 영화제에 낼 생각이다. 오랜만에 제주에 오니 고향에 온 것 같다.”

-중국 손님들과 함께 왔다.
“지난해 제주에 스튜디오를 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직접 보고 싶어 했다. 허베이성 출신의 우밍중도 그중 하나다. 청두에 예술인촌을 조성 중이라 저지예술인마을 운영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 우밍중은 차밭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제주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다. 오늘도 새벽부터 골프를 쳤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다는 점은 놀랍다. 음식도 아주 맛있다.”

-한국 문화에도 영감을 받나.
“물론이다. 예를 들어 돌하르방 같은 것은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한·중 예술가 ‘관시’ 역할 하는 박철희 대표
서예를 전공한 박철희 대표(사진 오른쪽)는 2000년 베이징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미술품 경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쩡판즈·장샤오강·팡리준·위에민준 같은 특급 작가들과도 막역한 ‘관시’를 쌓았다. 펑정제 스튜디오 설립을 위해 그는 3년간 제주도를 180번 이상 오갔다. 주소도 제주도로 옮겼다. 그의 꿈은 제주도에 ‘예술 특구’를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를 맞아 한·중·일 중간에 있는 제주는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예술 시장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에는 ‘아시아예술경영협의회’도 만들었다.

-최근 중국 미술시장은 어떤가.
“전반적으로 회복되는 중이다. 고서화와 블루칩 작가에 쏠림 현상이 있다. 중국 전역에서는 미술관 붐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틀에 하나 꼴로 생기고 있다. 중국 작가들은 이제 갤러리 전시를 넘어 미술관 전시를 유행처럼 고려하고 있다.”

-왜 미술관이 늘어나나.
“정치에서 경제로, 다시 문화로 가는 패턴이다. 상하이의 뷰티텍과 렁미술관은 서로 경쟁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서고 있다. 한 미술관에서 1년에 5000억원 이상을 미술품 구매에 쓰고 있다.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알린다.”

-한국이 그 붐에 편승하는 길은 없나.
“쉽지 않다. 작가를 알리는 중문 소개서는커녕 영문 소개서조차 거의 없다. 옥션 데이터도 별로 없다. 홍콩 크리스티 같은 데 나가보면 쩡판지의 작품이 백남준의 그것의 10배가 넘는다. 거품 아니냐고? 그게 시장이다. ‘미술은 문화 산업의 꽃’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세계 미술시장을 아직 잘 모르고 전략도 없다. 작품가 측면에서는 동남아 작가들에게도 밀린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홍콩 크리스티가 아시안 게임이라면 우리는 매번 예선 탈락하고 있는 셈이다.”

-예술 특구는 어떤 효과가 있나.
“작가 한 명의 힘이 얼마나 큰가.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베이징 798 예술특구도 처음엔 작가 몇 명의 작업실로 시작했다. 미술 시장은 네 박자가 맞아야 한다. 컬렉터, 딜러, 아티스트, 큐레이터다. 우선 작가부터 모이게 하자는 거다. 중국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제주로 오고, 인도와 싱가포르, 한국의 유명한 작가도 이곳으로 모이면 시너지가 생긴다. 그럼 큐레이터들이 오고, 화상들이 오고, 컬렉터들도 올 것이다. 작가가 움직이면 시장이 움직인다.”

-제주가 외국인에게 팔린다는 것에 민감한 반응도 있다.
“베이징 왕징을 한국촌이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지 않나. 798을 키워준 것도 외국 자본이다. 나는 이게 피라고 본다. 수혈 받으면 살아난다. 피가 여기저기 돌면 다같이 살 수 있다.”

-중국 작가들과 친분이 많다.
“중국 작가들은 컬렉터에게 서로 ‘좋은 작가’라며 소개해 준다. 그리고 정보를 나누고 같이 움직인다. 우리는 서로 인사도 안 한다. 문화가 참 다르다. 그래도 되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난정미술관장 김옌 “중국 내륙보다 가까운 제주”
김옌 청두난정미술관장(아래 사진)은 펑정제에 대한 덕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쓰촨성 출신인 그가 1년에 수억원의 장학금을 고향 후배들에게 주고 있다며 치하했다. 이에 대해 펑정제는 “어릴 적 힘들게 살았다.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것은 선배의 기본”이라고 슬쩍 받았다.

-청두난정미술관은 어떤 곳인가.
“중국 남서지역 민영미술관으로는 최대 규모다. 중국 현대미술의 핵심지역이다. 장샤오강·조춘야·펑정제 등 중국 대표작가군이 이곳 출신이다. 청두 역시 중국 남서부의 중요 도시로 유구한 역사문화를 자랑하는 곳이다.”

-제주도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공기 좋고 먼지 없어 생활의 안락함이 보장된다. 또 홍콩은 1주일밖에 못 있지만 이곳은 무비자로 중국 내부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리에도 중국어가 많아 매우 편하다.”

-이번에 제주를 방문한 이유는.
“청두시 차원에서 제주도와 국제 교류를 하고 싶다. 이번에 제주도립미술관 김현숙 관장과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자고 구두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쓰촨미술대학과 난정미술관에서 문화교류포럼을 개최한다. 한국 측 대표로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포럼을 해보자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류를 하게 되나.
“세 가지 측면이다. 우선 전시 교류. 둘째로 예술가 상호 파견 및 주재. 세 번째는 청두시 도시문화홍보전을 제주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미술관장으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미술관이 어떻게 사회에 공헌하는가, 또 예술을 어떻게 대중화시키는가다. 보다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향후 계획은.
“방문 자체가 교류의 시작이다.”

제주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제주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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