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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우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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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사장, 이번 하나 따셨다죠.』『워낙 조그마해서 말하기 창피스럽습니다.』
『큰거 한 장 짜리 정도 됩니까?』『작은 거 6개 짜리 입니다.』
『지난번공사에 재미 좀 보셨습니까.』『한장 정도 남았지만 그전에 반장 손해 본게 있으니 겨우 본전 건진 셈이지요. 요즘은 워낙 박해놔서 옛날 같지 않아요.』
중동「쿠웨이트」의「힐튼·호텔·로비」에서 만난 한국인 건설회사 사장끼리의 통화다.
여기서 큰거 한장이면 1억「달러」, 그냥 l장이면 1천만「달러」를 가리킨다.
이젠 1억짜리 공사 하나 따는 건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끔 되었다.
또 5백만「달러」정도 손해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반장 손해보더라도 신용만 얻어 놓으면 다음 1장 남는 공사 따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1천만「달러」이면 원화로 환산해서 48억5천만원. 불과 3∼4년 전만 해도 우리 나라의 기업 치고 1년 순익이 10억 넘는 것이 드물었다. 지금도 연간순익이 50억원을 넘으면 대기업에 속한다.
그런데 중동 진출업체들은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1장 손해보고 또 1장 벌기도 한다. 반장쯤 손해봐도 다음 1장 벌면 되니까 별로 괘념하지도 않는다.
계산단위가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다. 중동공사를 한번 해보면 국내공사는『쩨쩨해서』못한다고 한다.
까다롭고 말 많으면서 별 남는 것이 없는 국내일보다 중동에서 한번 크게 놀아야 승부가 난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같은 나라는 84억「달러」짜리 도시건설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84억「달러」면 원화로 약 4조원으로서 우리 나라의 예산과 거의 맞먹는다.
석유 때문에 졸부가 된 중간산유국에선 돈을 쓰는 단위가 다르다.
항구하나 만드는데 10억「달러」정도는 가볍게 쓴다. 중동 산유국 중에서도 특히 돈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나라는 어려운 형제나라들에 손크게 원조를 듬썩듬썩 주고도 돈 쓸데가 없어 고민일 지경이다. 사업만 좋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구미기업에 비해서 다소 늦었지만 재빨리 중간시장에 뛰어든 한국기업들은 마치 전쟁하듯 건설공사를 벌이고있다.
「쿠웨이트」의 낮 기온은 대개 섭씨 41도쯤 된다. 습도가 낮아 더위를 덜 느끼지만 모랫바람이 섞인 41도의 기온은 사우나탕을 연상하면 된다.
때문에 낮엔 12시부터 4시까지 휴식시간이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길거리엔 사람하나 없다. 강한 햇볕 때문에 대낮엔 15분만 걸어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한국공사장엔 2시만 되면 일을 시작한다. 노무자들도 불평이 없다. 1시간이라도 일을 더 많이 해야 가봉이 많아진다. 오직 돈 벌러 중동에 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땡볕에 개미같이 일하는 한국노무자들을 보고 구미인들은 고사하고 현지인 마저도 경악의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처음엔 경악했다가 요즘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별개의 인종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똑같은 작업복에 작업모, 일사불란한 규율, 밤에 횃불까지 켜놓고 벌이는 철야작업 광경에 현지인들은 공포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한국노무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구미인들은 월남에 갔던 군인들이 옷만 바꾸어 입고 중동에 전투하러 왔다는 평을 하고있다.
가족과 같이 살면서 하루8시간 일하고 샤워하고 TV나 보다가 6개월 지나면 휴가차 본국으로 가는 그들에 비해 한국노무자들은 생사를 건 전투를 하고있다고 밖에 비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공사는 대개 공기가 3분의1쯤 단축된다. 그것이 바로 남는 것이다. 낮잠 잘 것 다 자고 휴가 다 찾고 하는 기준으로 계산한 공기이기 때문에 조기달성은 당연한 것이다.
「쿠웨이트」에선 한양주택이 시내한복판에서 호텔 공사를 하면서 어떻게 극성스럽게 또 빨리 지어 올렸는지 국왕이 몇 번이나 지나가다 쳐다보고 감복, 자기 집무실공사는 반드시 한양에 맡기도록 특별지시를 내린 일도 있다.
한국사람, 특히 노무자들의 초인적인 열성·집념 때문에 벌써 한국의 수주고는 잔고 「베이스」로 80억 달러에 달했고 금년 말까지 1백억 달러를 가볍게 넘을 전망이다.
당초 예상보다 금년실적은 더 호조이다. 바야흐로 「골드·러시」다. 「골드·러시」에 참여하기 위하여 많은 기업들이 뒤늦게 모여들고 있지만 벌써 선발기업들의 확고한 기득권의 강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늦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기웃거리고만 있다. 중동의 황금경기는 한국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수주한 공사를 다 하려면 국내에서 사람과 물자가 썰물처럼 빠져야 할 것이다. 그대신 쏟아져 들어오는 외화 때문에 돈의 홍수를 이룰지 모른다.
기업판도는 물론 경제구조·국민생활패턴의식 구조까지도 바꿀만한 엄청난 황금의 소용돌이가 중동사막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필자=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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