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참전 아들 걱정, 재미동포 방병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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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것도 힘들고 고단한 이민생활 속에서 금지옥엽 하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면 그 심정이 얼마나 애탈까.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방병호(47.사진)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2년 전 미 해병대에 입대한 아들 승규(21)씨가 지난 2월 초 선발대로 이라크로 떠난 뒤부터 그랬다.

그는 아들에게서 최근 3주 동안이나 소식이 없어 초조해 하다가 며칠 전에야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전쟁이 시작되기 하루전인 3월 19일에 쓴 것이었고, 전쟁 발발 이후 소식은 여전히 알 수 없다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부디 건강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사랑해요."

그는 아들이 이라크로 떠나기 몇시간 전 전화통화에서 남긴 이 말이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고 했다.

"아들 말대로 모든 시간을 기도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 달리 어떻게 할 도리도 없지요."

시시각각 쏟아져 들어오는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지만 마음은 더욱 무겁다. 시가전이 벌어지면 미군 인명피해가 커질 것이라느니, 게릴라전이 시작됐느니, 자살폭탄조가 줄을 잇느니 하는 뉴스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앚기 때문이다. 방씨가 특히 가슴을 졸이는 이유가 있다.

해병대 특등사수인 아들이 특수임무를 맡고 있을 가능성이 큰 탓이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낮엔 더욱 일에 몰두하지만 손님들이 조금만 뜸하면 마음은 어느새 아들과 함께 전장으로 향하곤한다.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동네 사람이나 조금만 낯익은 손님이 오면 아들이 이라크전에 참전 중이라고 털어놓는다.

방씨 가족은 1986년 한국을 떠나 파라과이 이민길에 올랐다. 그 때 딸이 다섯살, 아들이 네살이었다. 거기서 10년을 살다 7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다. 지금사는 웨스트뉴욕이란 곳은 허드슨강 건너 멀리 뉴욕이 건너다 보이는 도시로 남미출신 사람들이 90%다. 자식들이 어릴때 이민을 왔지만 우리말을 잊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쓴 덕에 아버지에게 보낸 아들의 편지는 한글로 쓰여있다.

아들은 고교시절부터 군인을 꿈꾸어 왔다고 한다. 2학년 때부터 방과 후엔 근처의 해병대에서 예비훈련생으로서 체력단련을 했으며, 졸업과 함께 입대했다.

"모래폭풍이 꼭 전쟁을 꾸짖는 소리 같이 들립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죽고 살고, 그래서 지금 여기 와 있지만 이 전쟁이 그들의 종교와 신념까지 바꾸진 못할것 같아요" 틈틈이 시도 쓰고 인터넷에 글도 올리는 방씨는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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