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의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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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전거 도둑』이란 명화가 있었다. 「빗토리오·데·시카」감독의「이탈리아」영화.
자전거를 잃어버린 주인공(마지오라니)은 그로 인해 실직을 하게 된다. 고심 끝에 그는 남의 자전거를 타고 도망간다. 이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길을 가던「로마」의 시민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은 것이다.
실직자와 범죄자가 들끓는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모럴」과「이모럴」(부도덕)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묘한「콘트라스트」를 조명하고 있다. 홑이불을 전당포에 맡기고 간신히 구한 자전거를 훔쳐 가는 세태가 있는가하면 그 일각에는 남의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사람을 고발하는「모럴」의 일맥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전 수상「알도·모로」의 피살 소식을 들으며 문득 그 영화가 생각난다.「모로」는 극렬「테러리스트」인「붉은 여단」에 납치된지 55일만에 끝내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 의아스러운 것은 그 모든 일들이 백주의「로마」에서 그것도 도심에서 일어났지만 끝내 비밀이 지켜진 사실이다.
경찰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시민의 냉담은 더욱 충격적이다. 정치의 무능이 극치에 달하면 이 모양이 되는 것인지,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자전거 도둑』을 잡던 그「모럴」마저 죽어버린 것인지-.
이 지구상에는 악명 높은「테러」단체들이 무려 2백26개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6개국의 지하에 잠복한 이들「테러리스트」들은 지난 10년 동안 1천3백 여건의「테러」행동을 저질렀다. 폭파·납치·도살·선동·방화 등 악랄한 수법은 무엇이든지 동원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체제거부와 폭력혁명. 따라서「테러」단체들은 거의 예외 없이「마르크시즘」을 신봉하거나 추종하고 있다. 물론「이탈리아」의「붉은 여단」도 그 중의 하나다.
「모로」를 납치한「붉은 여단」은 그 동안 몇 차례의 협상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두목을 감금하고 있는 이 정부는 끝까지 그 제의를 거부했다. 생명을, 그것도「이탈리아」정치의「심벌」이 되고있는 거물지도자의 생명을 내건 협상이었지만『악마를 천사로 만드는 일』에는 기어코 눈을 돌렸다.
그 결과는 한 인간의 비극을 불러들였지만「테러리스트」의 잔혹성을 증거하는데는 더없이 뼈아픈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의 제물이 된 한 인간의 어이없는 죽음에는 인류애적인 동정과 연민을 금할 수 없다.
「모로」의 피살은 광신적인 폭력주의자들을 혐오하는 세계의 모든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도 남을 만하다.「이탈리아」도 이젠 그런 교훈을 딛고 일어서는 용단과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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