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김영란법과 규제개혁은 한 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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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고백하건대 나는 아내가 모르는-모른 척하는-비자금을 갖고 있다. 아내에게 받는 용돈으로는 사회생활하는 데 모자라서다. 대부분 사람들과 어울리는 비용이다. 이런 비자금을 없애려면? “발각되면 아내에게 몇 배를 물어내야 한다”는 법을 만들면 효과가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비자금을 더욱 은밀히 숨기려 할 것이라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회생활을 줄이는 거다. 은퇴하면 비자금이 줄어드는 것처럼.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마찬가지다. 돈 주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비자금이고, 받는 공직자로선 뇌물이다. 이를 없애거나 줄이는 방안은 남편 비자금과 다르지 않다. 우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적발되면 몇 배의 벌금을 내게 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틀어막는 거다. 일명 김영란법(法)이 그것이다. 금품을 수수하거나 부정청탁을 하면 징벌적 벌금(과태료)을 매기고, 감방에 보낸다는 내용이다.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 운운하며 빠져나가던 구멍도 틀어막았다. 통과되면 공직사회와 기업계가 확 달라질 게다.

 그러나 이걸로는 미흡하다. 남편 비자금처럼 법망을 피하려는 공직자와 기업인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비자금의 원천인 규제를 개혁하는 거다. 기업인이 공직자에게 돈을 주고 향응을 베푸는 건 사업상 필요에서다. 규제를 풀고 특혜를 달라고 청탁하기 위해서다. 규제개혁이 역대 정권의 단골메뉴였던 이유다. 그런데도 아직도 문제다. 규제가 발목 잡고 있다는 기업인들은 여전히 많다. 공장설립 절차의 간소화란 말은 신물 나게 들었지만 공장 설립은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할 정도다. 규제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을 걸로 보는 까닭이다. 규제가 많을수록 더욱 그럴 거다. 오히려 뇌물 액수는 더 올라가지 싶다. 들킬 경우 받을 가중 처벌액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1981년 과외금지법이 시행되자 과외비가 올랐던 것처럼. 기업인도 마찬가지다. 공장을 다 지었는데 인가가 안 떨어진다고 하자. 이대로 망할 것인가, 뇌물을 줄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는 기업인이라면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비슷한 일이 94년 있었다. 정부가 기업의 건당(件當) 접대비 허용한도를 제한하자 기업은 오히려 반대했다. 규제와 인허가에 목숨이 걸려 있기에 접대비 한도가 ‘목의 가시’였기 때문이다. 2008년 폐지된 이유다.

 요컨대 남편 비자금이든 부정부패든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써야 소기의 효과를 거둔다. 김영란법과 규제개혁은 한 몸이란 얘기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형국은 정반대다. 김영란법은 지지부진하고 규제는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오해 말기 바란다. 규제는 악이고, 규제개혁은 선이라고 주장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사전적 규제는 풀고 사후적 규제는 강화하자,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속에서는 기업이 맘껏 뛰놀게 하되 울타리를 넘으면 엄벌하자는 의미다. 그래야 부정부패 척결이 가능하다.

 안전 규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경제 규제보다는 개혁에 더 신중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큰 방향은 마찬가지다. 한번 되돌아보자.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국회의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새로이 규제를 만들고 기존 규제는 강화했다.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듯이 대형 참사는 줄어들지 않았다. 규제 강화가 전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 참사가 터져도 기업인과 공직자는 큰 손해를 안 보기 때문이다. 안전 불감증이 치유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니 기업인은 여전히 안전을 경시하고, 공직자는 여전히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거다. 이럴 바엔 차라리 규제를 개혁하고 안전관리를 기업에 맡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대신 대형 참사가 터지면 기업은 망하고, 기업인과 공직자는 중형을 받게 하자. 기업인은 안전에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하고 감독기관은 관리·감독을 대충 하라고 해도 철저히 하지 않을까. 기업 살인죄를 포함해 유병언법(法)이 긍정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