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사건서 일본은 푸대접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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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요미우리」(독매)신문은 KAL기 사건에 대해 『국민들의 생사문제까지 미소 양대국의 힘을 빌어야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실히 증명한 것』이라고 보도, 미소만의 교섭을 은근히 꼬집었다.
어떻든 이번 KAL기 사건으로 일본은 「경제력=국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고 있고 또 소련의 대일태도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역학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아사히」(조일) 신문은 논평했다.
미국과 함께 한국정부로부터 중재를 받고 일본도 대소교섭에 나섰으나 소련은 일본을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국과만 머리를 맞댔다.
사건발생 당일인 24일 하오「모스크바」주재 일본대사관의 「다나까」(전중) 참사관은 동경으로부터 사건경위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소련외무성 일본담당과장의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일언방구도 듣지 못했다. 5시간 후 「이시다」(석전) 「레닌그라드」주재총영사가 이임인사차 외무성을 방문했을 때 「소로비에프」제2극동부장으로부터 『기체는 소련령 안에 있고 승객은 무사한 것 같다』는 짤막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후 3시간반이 지난 하오 9시30분 「코시긴」소련수상과 「나까가와」(중천) 일본농상과의 회담에서 사건의 전말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코시긴」소련수상이 일농상에게 이 같은 정보를 준 것은 「나까가와」농상을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한 신문은 평했다.
즉 「나까가와」농상은 자민당의 매파이고 대중공협상에 반대하는 「세이란까이」(청람회)의 좌장. 그래서 지난번 「센가꾸」(첨각) 열도 영유권분쟁 때 일본을 지지했던 소련으로서는 반중공파인 「나까가와」를 대접하지 않았겠느냐는 풀이다.
일본대사관측은 일본승객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코시긴」수상의 전언 이외는 별다른 것을 통보 받지 못했다.
일본인의 생사여부 문의에 대해 소련외무성측은 『오늘은 「타스」통신보도이외는 정보가 없다』고만 했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소련주재 미대사관은 이미 소련측으로부터 『승객·승무원을 인계 받기 위해 미국민간비행기가 「무르만스크」에 온다면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회답까지 얻었다.
소련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후꾸다」수상의 말에서도 풍겨진다.
24일의 기자 회견에서 『일본 같으면 민간항공기가 영공을 침범해 올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물론 총격을 가하지 않는다. 어떤 나라도 총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경=김두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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