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의 철군일정 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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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8억「달러」 상당의 대한 장비 이양법안을 적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일정을 일부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당초의 철군「스케줄」대로 한다면 금년 중 6천명의 병력이 철수하고, 제2진 9천명이 80년 중반에, 그리고 나머지가 82년 중반까지 철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스케줄」은 물론 8억「달러」 상당의 장비이양을 포함한 「철군 보완책」의 동시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변경 발표된 수정안에 의하면 금년도 철수 예정이던 6천명 가운데 3천4백명만이 철수하고 나머지 2천6백명은 의회의 거취를 기다려 79년말까지 잔류시킨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미의회가 만약 79년말까지도 철군 보완책 승인을 지연시킨다면 그 시한 역시 또 연기될 수도 있다는 추논이 적어도 논리상으로는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의회가 「철군보완」에 협조하지 않는 한 철군「스케줄」은 불가피하게 지연될 수 밖에 없다는 배수의 논리가 일단 성립한 셈이다.
그러나 「카터」 대통령이 이번에 시사한 것은 철군공약 자체의 근본적 수정도 아닐뿐더러 『4∼5년 내의 철군완료』라는 철군시한 자체까지를 실질적으로 연장한 것도 아니다. 제1진 철수병력의 일부를 내년 말까지 잔류시킨다고 해서 『4∼5년 내의 철수』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카터」 성명은 결국 『박동선 사건 해결에의 협력 없인 철군보완책 안해준다』는 의회일부의 압력과 『보완책 없는 무조건 철군엔 반대한다』는 철군반대파의 압력에서 다같이 벗어나고자 하는 「카터」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 평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 조치로 「카터」대통령은 철군 「스케줄」 변경의 책임을 의회에 전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보완없는 철군이나 철군자체를 우려하는 군부·보수파의 압력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카티」대통령이 이와 같은 정치적 전술로 나오게 된데에는 앞으로 1년이면 박동선 사건을 둘러싼 의회 내의 문제가 일단 마무리지어질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또 실상 막바지에 이른 박동선사건만 앞으로 1년 안에 원만히 수습되면 의회로서도 더이상 보완책 승인을 지연시킬 이유와 명분이 없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해결할 「미국의 정치문제」이고, 우리로서는 단지 「카터」성명이 함축하는바 두 가지 사항에만 관심을 두면 족할 것이다.
첫째는 「카터」성명이 푸렷이 시사한 『무조건 철수, 보완없는 철군, 한국의 안전을 위태럽게 하는 방식의 철군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이 단호한 결의는 한국의 안전유지가 미국자체의 국가이익 수호에도 필수적이라는 전략적 평가를 재확인한 것으로 우리의 견해와도 전적으로 일치한다. 이는 「카터」대통령의 대한반도 인식이 보다 현실화되었다는 증좌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점은 이번 「카터」 성명이 명확히 드러낸 『경치는 경치, 안보는 안보』라는 원칙이다. 박동선 사건등 정치문제에 관련된 논란과 철군문제 등 전략문제에 관한 「이슈」를 혼동·결부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철군보완책 같은 막중한 문제롤 박동선 사건 정도의 정치문제 때문에 그르쳐서도 안되며, 후자를 위해 전자를 이용하거나 희생해서도 안되겠다는 논리인 것이다. 비록 「카터」 대통령 자신은 성명에서 그런 말을 명확히 언표하진 않았으나 미국의 의회·행정부·사회일반은 이번 기회에 그 점을 좀더 뚜렷이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난 셈이다. 미국 지도층 인사들의 차분한 성찰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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