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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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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최재천 지음, 궁리, 9천5백원

국내 자연과학 분야에는 두명의 스타 저술가가 있다. 물리학의 정재승(고려대)교수와 생물학의 최재천(서울대)교수가 그들인데, 최교수의 신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사회생물학 분야의 최신연구 성과를 친근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한 과학 에세이다.

리뷰는 두 꼭지로 이뤄졌다. 과학저술가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이 각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의미와 무게를 달아봤다.

미래학자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예언한 바 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그리고 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 책에서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만방에 고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생물학자답게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컷들의 행태를 인간과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환기시켜주는 다윈의 '성 선택론' 에 따르면, 번식에 관한 결정권은 암컷에게 있다.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기가 막히게 매력적이어서 암컷으로 하여금 사족을 못쓰게 하거나, 암컷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독점하여 그들의 선택권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전략 구사를 말한다.

저자가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 20년 간 연구해온 민벌레, 그 수컷은 허구한날 암컷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게 삶의 전부다. 암컷을 유혹하는 꿩 수컷의 현란한 동작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유전자.호르몬.두뇌의 차이로 남녀는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 '생물학적 전환'에 도전해야 한다고 성큼 제안한다. 성(sex)은 정해졌으나 젠더(gender)는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자식을 돌봐야하는 것은 항상 여성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열대에 사는 독침개구리.가시고기 등은 아빠가 자식을 키우는 좋은 예라는 것이다. 특히 새들은 암수가 함께 공동책임 하에 자식을 양육한다.

'집사람이 반드시 여성'일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제목에서 보듯 저자는 또 남성도 화장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꽃미남이 각광받고 쌍꺼풀 수술, 보톡스 주사를 맞는 남성이 늘어나는 까닭은 바로 여성들의 간택을 받기 위한 노력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성(性)의 패러다임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현상들은 생물학적 '진화'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저자도 말했듯이 여성보다는 남성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여자는 신의 과오'라고 부르짖었던 독일 철학자 니체를 향해서도 저자는 사회생물학자답게 '염색체 이론'을 들어서 정면 도전하고 있다.

여자는 반듯한 X염색체를 두 개씩이나 갖고 있지만(여자=XX), 남자는 X염색체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없는 Y염색체를(남자=XY)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정자와 난자의 가치까지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꺼번에 천문학적 숫자의 정자를 쏟아 붓는 남자는 마치 값싼 주식을 여러 종목 구입한 다음 운좋게 성공하자는 물량작전이고, 여자는 소수의 황금주에만 투자하는 질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자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여자남자 제대로 알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최윤희 <전 여성신문 편집위원.카피라이터>

오랫동안 사회생물학은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왔다.

그 대상이 유대인이든, 여성이든 간에 차별이 이루어질 때면 늘상 생물학적 근거가 들먹여졌고, 사회생물학자들은 이들의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가 생물학적으로 미리 결정된 것이라는 주장으로 현상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따라서 저자도 말하듯이 "1980년대까지도 자신을 사회생물학자로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사회생물학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사회생물학자임을 밝힌 저자는 놀랍게도 페미니즘과 사회생물학의 화해를 제기하고, 나아가 금세기가 여성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바로 생물학에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의 핵심은 "모계효과(maternal effect)"다.

전통적으로 발생유전학의 측면에서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과정은 주로 정자와 세포핵 DNA의 관점에서 설명되었다. 정자가 씨(남성의 DNA)를 뿌리면 난자로 표상되는 여성은 그 씨가 자라게 하는 밭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난자의 수동성과 '유전자=생명'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수정과정에서 난자가 수행하는 적극적 역할, 발생과정에서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난자의 세포질의 역할, 그리고 배아와 모체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에 대한 문화적 인식 변화가 생물학 연구에 영향을 미친 결과인 셈이다. 한편 일찍이 다윈이 자연선택과 함께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기했지만 이후 남성의 우월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곡해되었던 성선택 이론도 동물행동학자인 필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여성의 주도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지금까지 공격성 강하고 힘센 수컷이 생식을 주도한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암컷들이 선택권을 가지기 때문에 암컷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양질의 정자를 공급해주고 젊은 수컷에게 밀려나는 '기운센 머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간 성차(性差)의 원천으로 간주되던 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실은 남녀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런 발견을 남녀평등의 과학적 근거로 삼는 필자는 '열린 사회생물학자'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스스로 가부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기울이고, 호주제 폐지처럼 쉽지 않은 주장을 펼친다는 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암컷이 번식의 주체라는 사실과 여성의 세기가 오는 '생물학적 필연성' 사이의 거리는 멀다. 이 책에 제시된 발생유전학.진화론.동물행동학의 연구성과는 중요한 것이지만 사회생물학의 근거는 아니다.

진정 더 이상 성차가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펼쳐지려면 어떤 종류든 생물학적 필연성은 거부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동광<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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