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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에 길 터줬더니 끼어들고 따라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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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일 오후 5시 경기도 수원소방서 조한익 소방장이 소방차에 올라탔다. 주택가에 난 화재 진압을 위한 출동이었다.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권선사거리 부근에 접어들자 퇴근시간대 차량들로 도로가 꽉 막혔다. 사이렌과 협조 방송을 계속 내보내도 대다수 운전자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통사정을 해가며 겨우 차량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는 찰나, 옆 차로 차량이 소방차 앞으로 대뜸 끼어들었다. 소방차 뒤로도 차량 몇 대가 따라왔다. 소방차 ‘길 터주기’를 틈타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들’의 행렬이다.

대로를 나와 골목길로 들어서자 노란색 어린이집 통학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없었고 휴대전화번호마저 적혀 있지 않았다. 소방차에 타고 있던 소방대원 모두 발을 동동 굴렀다. 돌아서 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상황이었다. 결국 현장을 100m 앞두고 대원들은 호스를 짊어지고 뛰기 시작했다. 조 소방장은 “출동 한 번 나가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이렇게 진이 빠진다”고 푸념했다.

 2011년 12월부터 긴급출동차량 진로 방해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현실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긴급차량 진로 양보 의무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는 단 21건에 불과했다. 인천 남부소방서 이환웅 소방교는 “단속 기준이 모호해 적발 자체가 어려운 데다 급하게 출동을 나가는 와중에 단속까지 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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