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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공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생산·유통·사용의 현황과 문젯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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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법률 제445호 농약 관리법이 제정·공포된 것은 1957년. 그러나 이 법률은 20년이 지나도록 시행령이 뒤따르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되어 왔다. 농약 공해에 관한 정부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본보기다. 그 동안 국민의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농약의 관리·규제는 행정의 『자의에 맡겨진 어수룩한 지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에 농약 관리법을 개정한 데 이어 금년 4월에 20여년 간 미루어 온 시행령을 만들었으나 담양 고은석씨 일가족의 예를 들것도 없이 이미 농약에 의한 피해는 중증에 접어든 느낌이다. 농약의 생산·유통·사용의 현황과 문젯점을 더듬어 보가.

<생산>
현재 전국의 농약 생산 업체는 경북·대한·동방·동양화학·미성·서울·영일·전진 산업·중앙·한국·한국삼공·제일농약 등 12개 업체.
작년까지만 해도 14개 회사였으나 일진·신상록화학 등 2개사가 도산 혹은 경영난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농약 공업 협회 발행 『농약 연보』에 따르면 이들 농약 회사에서 생산·판매하는 농약의 종류는 1백60개 품목 2백33개 제품.
연간 생산량은 제품량 기준 17만6천t(76년)에 달한다. 72년의 3만3천t에 비해 무려5배 이상이 늘었다.

<유통>
제조된 각종 농약은 전국 1천5백76개 농협 판매망과 3천9백2개 농약상의 손을 거쳐 실수요자인 농민의 손에 들어간다.
이중 수도용 살균·살충·제초제와 맥류 종자 소독제 등 주곡 생산에 필수적인 것은 농협이 매년 필요한 물량을 구매 확보하여 농민에게 공급하고 과수·원예·산림용은 일반 농약상에서 자유 판매하고 있다. 또 유독성 농약은 농협을 통해서만 판매하도록 행정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유독성 여부의 판별 기준이 없어 그때그때 정부가 적당히(?) 규제를 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유독성 농약으로 정부가 생산·판매를 규제하는 것은 ▲유기 수은제인 도열병 약 「세레산」석회, PTA-B, 종자 소독약 「메루크론」 ▲유기 염소제인 BHC, DDT 「드린」제, 「헵타크롤」분제 ▲비소제인 비산연 「네오아소진」 ▲고독성인 「파라치온」 등이다.
이중 「세레산」석회는 69년부터, PTA-B는 73년부터 생산·사용을 전면 중단했으나 「메루크론」은 계속 사용해 오다 금년부터 생산·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BHC는 71년부터 식량 작물 사용을 금지하고 농협을 통해 산림·이전용만 사용토록 했으며 DDT「드린」제는 73년부터 생산을 금지하고 「헵타크롤」분제도 식량 작물 사용은 금지돼 있다.
비산연은 71년부터 시판을 막고 과수에 한해 사용하며 「네오아소진」은 75년부터 출수 후 사용을 금지하고 올해부터는 시판을 못하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는 어디까지나 행정 조치에 불과하고 강제 규정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정부의 지시가 얼마큼 지켜졌느냐는 것은 의문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벼 이화명충이 번지자 정부가 이미 71년부터 식량 작물 사용을 금지했던 BHC분제를 대량 공급, 사용토록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약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이름 뿐이라 할 수 있다.

<사용>
농약 사용의 문젯점은 이밖에 일반 농약상을 통해 규격품 외의 가짜 농약이 많이 나돌고 있다는 점과 농민들이 농약의 성능을 의심, 표시된 사용법을 무시하고 과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가짜 농약이나 부정 농약 유통 실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부가 77년 중에 연 56명을 투입, 4차례 단속을 실시한 결과 39개 농약상에서 4천여㎏을 적발한 사실만 보아도 적지 않은 양이 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민의 무모한 농약 사용 실태를 보면 종자 소독제인 유기 수은제를 논에 뿌리거나 심지어 살충 효과가 좋다고 청산가리를 사용하는 사례가 있으며 사용 기준량의 2∼3배를 쓰는 경우는 흔하다는 관계자들의 얘기다.
말하자면 우리는 농약 공해에 대해 벌거숭이로 노출돼 있는 상태다.
다행히 정부는 뒤늦게 나마 지난 연말 농약 관리법을 개정하고 올해에는 20여년간 미루어 오던 시행령을 제정, 농약의 관리·규제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생산·유통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농약 공해의 무서움을 인식시키고 올바른 사용을 계도하는데 획기적인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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