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찬삼 교수 제7차 세계여행기-「리마」교외의 「주검」의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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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페루」의 수도 「리마」시는 「콜룸부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43년 뒤인 1535년에 「스페인」정복자들에 의하여 건설된 옛도읍이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나라들의 이름이 한결같이 시적이며 미학적이듯이 이 「리마」란 이름도 그 어감이 아름다우며 <제왕의 도시>란 뜻이라 한다.
이 수도의 시민도 거의 전부가 「가톨릭」교를 믿고 있어서 성당이 많기 때문에 특히 일요일이면 「종소리의 교향악」을 이룬다.
흔히 「리마」하면 우리나라 사람에겐 몇 해 전에 있었던 비동맹 국가들의 회의 장소로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의 입김이 서린 역사의 도시이며 성당의 도시로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필자의 눈을 끈 것은 이 도시 교외에 마련된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많듯이 이 「리마」시의 묘지도 시체를 땅속에 묻지 않고 「아파트」처럼 세운7, 8층의 「빌딩」에 고이 간직하는 것이다. 이른바 「유해의 아파트」가 몇백 동을 이루고 있어서 오히려 「삶의 도시」인 「리마」시보다 더 커보일 만큼 이 노천 공동 묘지는 「죽음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유해를 모신 이 「아파트」는 「르-코르뷔지에」 기능주의 건축인 「유엔·빌딩」을 방불케 할만큼 얄팍하고도 단조롭게 만들어졌는데 양쪽에서 한구의 유해가 뉘어져 안장되도록 되어 있다.
시인 「보들레르」는 자기는 죽은 뒤 시체를 달팽이가 뒹구는 질퍽한 땅속에 묻지 말고 숫제 까마귀에게 쪼이게 해 달라는 내용(유언)이란 시를 남겼는데 이 「아파트」식 묘지에 묻히지 못한 것이 한일는지 모르나 이 노천 공동묘지는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묘지일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외롭지 않게 이같이 수많은 주검(시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정한가….
이 「주검의 아파트」의 방은 똑 같은 규격으로 되어 있으나 빈틈없이 봉한 문에는 십자가를 붙이기도 하고 합장하는 두 손으로 된 조각들이 있는가 하면 묘비명이 씌어 있기도 하다.
「페루」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제사날이나 한식날 등에 묘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한번씩 또는 늘 찾아와서 어버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또는 애인의 주검에 꽃을 갈아준다.
「라틴아메리카」사람은 <삶은 낙천적으로, 죽음은 경건하게>란 인생관을 지닌 듯한데 이것은 정말 본 받아야 할 것 같다.
필자가 이 노천 묘지를 찾았을 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가 모신 유해의 방에 꽃을 바치며 경건히 기도 드리고 있었다.
이 「주검의 아파트」를 찾아와서 아무런 거리감을 두지 않고 유해와 대화를 나누는 「페루」사람이야 말로 죽음을 삶의 연장처럼 생각하는 높은 차원의 생사관을 지닌 것 같다.
그런데 「리마」시민은 누구나가 다 이런 「주검의 아파트」에 묻히는 것은 아니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 한하고 있다고 한다.
산 사람보다는 죽는 사람이 더 많아질 테니 이런 「주검의 아파트」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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