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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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28년 동안 괌 섬에 숨어 원시생활을 해오던 일본의 횡정 소위는 문명으로 돌아오자마자 정밀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때 그의 머리카락 속에는 수은이 2PPM 섞여 있었다. 이것은 서구인들보다도 적은 양이었다.
그러나 6개월 후에는 8·2PPM으로 늘어났다. 완전히 평균적인 일본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수은 양이 늘어난 것은 횡정 소위가 새로 먹기 시작한 일본 쌀 속에 수은이 섞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약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쓰는 나라는 일본으로 되어있다. 지난67년에는 평균 1㏊의 농지당 12㎏의 농약이 투입됐었다고 한다. 그것은 미국이나 서독의 7배나 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많았던 것은 유기수은제 곧 초산 페닐수은과 메틸수은이었다.
문제가 크게 번지자 일본에서도 68년부터는 수은계 농약의 살포를 금지하였다. 그러니까 수은계 농약의 사용이 허가되어온 나라는 68년 이후에는 세계전체를 통해서도 우리나라뿐이었던 셈이다.
하기야 수은의 오염은 한국의 얘기만은 아니다. 지금 온 세계에서 1년간 수은생산량은 1만t씩에 달하는데 그 절반 가량은 환경을 오염시키며 있다.
더우기 석유·석탄 등에도 수은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것들이 타는 동안 세계적으로는 약 5천t의 수은이 산포되고 있다. 그러니까 도합 1만t씩의 수은이 해마다 축적되고 있는 꼴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자연 속에는 수은이 들어있다. 가령 토양에는 평균 0·05PPM의 수은이 있다.
이게 침식되고 풍화되어 해양에 흘러 들어가는 양은 해마다 5천t은 넘는다.
이래서 지금 해양 중에도 약 1억t의 수은이 녹아들어 있다고 봐야한다.
바다장어 등 바닷고기에 들어있는 수은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도 이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최근에 전남에서 온 가족이 만성수은중독에 걸린 혐의가 짙어지고 있다. 농약에 들어있는 유기수은은 무기수은과 달리 체내에 흡수되기가 쉽다. 또한 몸의 혈액의 3분의1이 늘 모여 있는 뇌에 축적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번 축적되면 이것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이게 심해지면 언어장애·수족마비, 그리고 발광·죽음의 비극을 더듬게 된다.
아직은 고씨 가족의 수은중독이 농약 때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유독성 농약에 대한 충분한 경종은 되었을 것이다.
당국에서는 이제야 겨우 유독성 농약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켰다. 너무나도 뒤늦은 조치인 것만 같다. 우리는 수은이 섞인 쌀을 먹어야할 가능성이 적어도 앞으로 수년은 남아있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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