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전사의 자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느 30대의 운전기사가 자살을 했다. 한 어린이가 그의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것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목숨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사고의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을 불러들인 엄연한 현실에 그는 어떻게 심신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연민이랄까, 동정이 앞선다. 그 운전기사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는 유언을 했다고 전한다. 과실사고를 내고도 철면을 감추지 않는 세태의 일각에는 이런 인간의 소리도 있는 것이다. 속담에 「양심은 푹신한 베개」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 운전기사는 가시베개를 베고 고통스러운 잠을 자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한햇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사고로 숨진 사람은 4천 여명에 이른다. 교통부의 원인분석에 따르면 운전기사 과실이 전체사고의 92%를 차지한다. 이 분석을 보면 자동차가 사람을 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치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운전기사가 악해서 그런 것은 결국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로·불성실·도로의 부조·자동차의 결합·과속…등도 마땅히 사고의 원인이 된다.
어느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지는 얼른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모든 원인들이 서로 엉긴 복합사고일 것도 같다.
자동차 사고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이런 흥미있는 보고가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전문가들이 조사한 것이다. 가령 미국의 자동차들이 매일 5분간씩만이라도 천천히 달리면 연간 l만2천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시간이 20분으로 늘어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4만5천명으로 늘어난다. 과속의 공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통계다.
미국 뉴욕주 정부가 발행한 『안전운전30조』라는 책자가 있다. 우리의 운전기사들에게도 참고가 될성싶어 몇 가지를 옮겨본다. ①가장 위험한 운전시간은 저녁이후다 ②선행 차의 꽁무니에 붙어다니지 말 것 ③야간행로의 통행인에 특히 주의 ④운전자는 한잔의 술도 사양할 것 ⑤졸리면 무조건 잠깐 쉴 것 ⑥앞자리엔 어린이나 애완물은 엄금 ⑦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은 그 순간 방향감각이 둔하다는 것을 명심할 것 ⑧급브레이크의 남용은 금물 ⑨운전석 앞에 인형이나 꽃을 놓지 말 것 ⑩차창으로 종이를 버리지 말 것(뒷차 운전기사의 정신 산란)―.
일본의 어느 학자는 이상적 운전기사의 조건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①책임 ②예견 ③주의 ④판단 ⑤유머.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자동차문명에 적응하려면 어느쪽도 모두 새로운 모럴에 대한 훈련과 각오가 필요하다. 편리를 동반해야할 문명을 고통과 저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