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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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지역이 강대국의 사활에 관계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안정유지는 미 정책의 지상명제라고 밝혔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안정유지가 미국의 전반적인 세계전략 수행에 얼마나 필수적인가 하는 것은 이미 재론의 여지가 없는 터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철수론이 제기되던 초창기에는 마치 그러한 인식자체가 변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마저 없지 않았던 만큼, 이번의 카터 발언은 팀·스피리트 연습과 더불어 그러한 오해와 오판을 불식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평가된다.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이 미국에 의해 이처럼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 지역은 노르웨이-일본-얼루샨 열도에 이르는 미국의 전지구적 방위 최전선상의 한 불가분한 요충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이 요충지대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수행하는 전략적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이 지역 자체에서의 미국의 국가이익 수호이며, 또 하나는 유럽에서의 위기발생 때 소련이 이 지역에 제2전선을 개설하지 못하게하는 기능이다.
첫쨋번 기능은 『미국이 계속 태평양 세력으로 존속해야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능인데, 이를 위해선 일본열도의 안전수호와 한반도의 안정유지 및 서태평양 해상교통로의 안전확보가 필수적이다.
둘쨋번 기능은 극동방면의 소련 군사력이 서구에서의 위기발생 때 이곳에서 무모한 별도행동을 일으키거나, 우랄 이서로 이동하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이다.
현재 소련은 30개 사단의 지상군병력과 전 해군력의 30%를 극동방면에 배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육군병력은 중공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나 해·공군력은 주로 미 7함대와 일본을 제압하기 위한 전력으로 간주된다.
이 해·공군력은 서구에서의 분쟁 발발시 동북아와 태평양의 제해권과 제공권 장악기도를 통해 미국의 힘을 동과 서로 분산시키는 데에 유효하게 사용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 지역에서 소련 해·공군력의 전력증강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전력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서구방위를 포함한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것이다.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우세유지와 방위 결의 천명을 불가결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곳이 아직도 평화정착 이전의 불확정적인 상태에서 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엔 상대편과 우리측의 확실한 분계선이 확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유럽식의 세력권이 분할·공인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불확정적인 상태에선 북괴에 의한 단 한번의 무모한 침략이라도 그것이 즉각 전 동북아의 대규모 국제분쟁으로 비화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불행한 가능성을 방지해온 최고의 분쟁억제 기능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과 그 침략격퇴 결의에 의해 수행되었다.
언젠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항구적이고 완벽한 평화질서가 정착한다면 미군의 그와 같은 기능은 상당부분 경감되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미국의 원천적 분쟁억제 기능과 그 실천수단은 질량으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존속해야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주한미군문제를 다루는 카터 행정부의 냉정한 현실인식을 거듭 촉구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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