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기상 침묵 작전, 최준우 샷 흔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기상이 25일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동갑내기 예비신부 곽보경씨와 기쁨을 나눴다. 2009년 소개로 만난 둘은 11월 22일 결혼식을 올린다. [사진 KPGA]

15번 홀(파4). 이기상(28·플레이보이골프)과 최준우(35·스릭슨) 모두 버디 기회를 잡았다. 2m 거리에서 이기상이 먼저 스트로크를 했는데 핀을 30㎝ 지나 멈췄다. 컨시드를 받을 만한 거리였지만 최준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기상이 홀아웃을 하려고 어드레스한 순간, 최준우가 컨시드를 줬다. 이기상은 공을 집어 들지 않고 그냥 홀아웃했다. 이기상은 경기 후 “최준우가 컨시드를 주는 시기가 한 타임씩 늦었다. 기분이 나빠서 그냥 홀아웃했다”고 말했다. 컨시드를 준 최준우는 이기상이 홀아웃하자 눈이 동그래졌다. 경기위원을 불러 컨시드를 받고도 홀아웃을 해도 되는지 물었다. 규칙상 문제는 없었다. 연습 삼아 해도 상관없다.

 25일 경기도 용인 88골프장에서 벌어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전. 두 선수는 우승상금 2억원이 걸린 결승 내내 컨시드에 인색했다. 상대가 50㎝ 이내의 퍼트를 남겨도 컨시드를 주지 않으려고 눈을 피했다. 컨시드를 늦게 주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다. 퍼트를 하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집어 들라는 말을 들으면 맥이 풀린다. 최준우는 15번 홀에서 그것을 노렸을 수 있다.

 이기상은 이를 외면하고 퍼트 연습을 했다. 반대로 최준우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최준우는 다음 홀에서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졌다. 짧은 파5인 17번 홀에선 티샷을 당겨 쳐 2온에 실패하면서 버디를 잡은 이기상에게 2홀 차로 패했다. 이기상이 우승했다. 그는 2008년 프로 데뷔 후 87경기에서 이번 대회를 포함해 2승을 했다. 그중 스트로크 경기는 81경기였는데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 매치플레이에는 여섯 번 나와서 2승을 했다. 그는 한국의 매치플레이 킹이었다.

 매치플레이는 전략 싸움이고 심리전이다. 타이거 우즈 의 코치를 했던 부치 하먼은 “우즈가 짧은 거리에서 가능하면 상대보다 먼저 퍼트를 해 홀아웃한다”고 했다. 우즈가 홀아웃하면 그를 따르는 갤러리가 자리를 움직여 남은 선수는 소란 속에서 퍼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티잉 그라운드엔 되도록 늦게 오는데 갤러리가 우즈에게 박수를 치면 상대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기상의 전략 중 하나는 침묵이었다. 상대와 거의 얘기를 하지 않고 뜨악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컨시드를 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한 것도 그의 전략 중 하나였다. 이기상은 이번 대회 32강에서 2011년 대회 우승자 홍순상(33·SK텔레콤), 16강에서 2013년 우승자 김도훈(25·신한금융그룹), 8강에서 2012년 우승자 김대현(26·캘러웨이)을 차례로 꺾었다. 하루 종일 표정이 없었던 이기상은 우승을 확정한 후 “(11월 결혼하는) 예비신부에게 우승 선물을 해서 기쁘다”며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용인=김두용 기자

◆컨시드=상대가 한 번에 홀에 넣을 수 있다고 인정해(concede) 한 타를 더하고 들어간 것으로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쓰는 OK와 흡사하나 골프 규칙상 매치플레이에서만 가능하고 스트로크 경기에서는 컨시드를 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