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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문제 해법, 일상의 데이터 속에 존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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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14면

중앙포토

“자동차 사고가 많이 난다면 가장 먼저 무얼 들여다봐야 할까? 운전자? 도로? 아니다, 자동차다.”

심야버스 설계한 김경서 서울시 정보기획단장

서울시 정보기획단 김경서(사진) 단장의 전 직업은 ‘다음소프트’ 대표이사다. ‘다음소프트’는 소셜네트워크의 키워드를 분석해 트렌드를 파악하는 빅데이터 분석 전문업체다. 그가 서울시의 러브콜을 받고 서소문청사에 자리를 잡은 지도 1년이 됐다. 그사이 그의 작품도 하나둘 생겨났다. 지난해 9월부터 운행하는 서울시의 ‘심야버스인 올빼미 버스’ 노선, 서울 시내 가판대를 활용한 ‘유동인구 밀착형 광고’, 노년층을 위한 지역 대형 복지센터 설립 등이다. 김 단장은 “빅데이터로 일군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을 지난 22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만났다.

-심야버스를 만드는데 어떻게 휴대전화 데이터를 분석할 생각을 했나.
“면적만 605㎢에 달하는 서울특별시에 9개의 버스 노선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야 시간대 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부터 살폈다. 사람들 대부분은 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가정을 세웠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제였다. 곧바로 KT와 데이터 제공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밤 12시부터 5시 사이 발신자의 통화 위치와 발신자 본인의 집 주소(billing address)를 추렸다. 모두 30억 건의 데이터가 수집됐다.”

-방대한 데이터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서울시를 1262개 구역으로 쪼갰다. 발신지와 주소지 데이터 수가 많을수록 육각형의 색깔은 더욱 진해졌다. 수십억 데이터가 수치가 아닌 연분홍과 진분홍 색깔로 단순하게 바뀌었다. 가장 진한 분홍색을 띤 육각형끼리 이으니 하나의 버스 노선이 완성됐다. 진분홍색의 분포상 버스가 조금 돌아서 가야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밤 시간대엔 차가 막히지 않기 때문에 운행시간도 크게 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방식으로 아홉 개의 노선이 완성됐다. 평균적으로 하루 6000명이 서울 심야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심야버스’가 빅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한 공공정책으로 꼽힌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일상의 문제는 일상의 데이터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자동차 사고가 많이 일어나면 자동차의 데이터 수집장치에서 자료를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차가 어느 골목에서 자주 급정거를 하는지, 얼마나 자주 상향등을 켜는지를 알게 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데이터에 따라 골목 앞에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할 수도 있고, 가로등을 하나 더 설치할 수도 있다. 심야버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밤늦게 귀가하기 힘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통화 버튼부터 누르는 데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일상을 들여다보면 뽑아낼 데이터도 보인다.”

-‘가판대 광고’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좋은 정책 가운데 하나로 뽑힌다.
“가지고 있는 재료는 100% 활용해야 한다. 서울시와 해당 구청들이 관리하고 있는 수천 개의 가판대도 소스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가판대가 있는 지역의 유동인구 성향을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여성이 많은 여의도와 강남 지역에는 ‘여성 귀가 도우미’ 광고를 가판대에 붙였고, 신촌·홍대 일대에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포스터를 부착했다. 모든 광고의 기본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지역 사람들의 데이터에 따라 맞춤형으로 접근해 공익광고를 부착했다.”

-요즘은 ‘한 번에 바로 타는 택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 서울시 택시들이 100㎞를 달린다고 할 때 승객을 태운 거리는 평균 42㎞에 그친다. 공차율이 절반을 넘어서는 수치다. 하지만 시민들은 늘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택시기사가 바라는 승객과 택시를 잡고 싶어 하는 승객을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목동 방향으로 가는 택시가 잘 잡히는 골목과 목동으로 가고 싶어 하는 승객이 많은 골목을 조사해 서로 만나도록 해주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물론 정확도는 낮을 수도 있다. 다만 시민과 택시기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에는 빅데이터를 어디서 구했나.
“서울 시내 택시에는 디지털 타코 그래프(DTG·차량운행기록정보시스템)라는 기기가 부착돼 있다. DTG는 서울시가 택시마다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주행거리 등을 확인하려고 단 장비였다. 필요 없는 정보는 사실상 버려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택시의 DTG도 빅데이터 수집장치인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영역에서 활용한다고 해도 빅데이터를 쓴다는 건 개인정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우리는 개인 식별이 가능한 자료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민간영역에서 쓰는 경우는 카드사나 통신사에서 할 일이다. 고객의 개인정보나 사용 성향 등을 분석해 고객 맞춤형으로 쓰는 것은 공공에서 할 일이 아니다. 대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느냐에 초점을 뒀다. 서울 시민이 보편적으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심야버스에서 30억 건이나 되는 데이터를 다룬 것도 빅데이터 자체의 정확성과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빅데이터에 의지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될까.
“빅데이터는 결국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방대한 양의 타깃에서 추출한 빅데이터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면 비교적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야버스도 운행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서울 시민의 항의나 민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시 행정에서 빅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의사결정과 정책 수립과정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우리 사회가 겪는 고질적인 갈등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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