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요리연구가 한정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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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맛의 세계란 참 오묘한것 같아요. 똑같은 재료, 똑같은 방법으로 만든 음식이라도 만든 사람에 따라 음식맛은 미묘하게 차이가 나거든요. 그맛의 정체를 찾아 배우고 가르치다보니 어언 10여년이 지났어요.』 요리연구가 한정혜(47)의 말이다. 그가 본격적인 요리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간 것은 나이 35세에 접어든 해의 봄.
10세짜리 맏이로부터 두돌을 채못넘긴 막내까지 올망졸망한 4남매와 남편을 친척부인에게 맡기고서였다.
『제앞가림도 못하는 아이들을 넷씩이나 두고,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와요. 그저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뿐으로 이것저것 헤아릴 줄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한씨는 20세때 고향 함남 북청에서 사법학교를 졸업했다. 당시는 해방직전의 혼란기라 서울진학에의 꿈을 묻고 국민학교 교사로 취직, 3년을 보냈다. 그후 직장을 그만두고 월남하여 23세때 결혼을 했으나 늘 마음한구석에는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첫아이를 낳은직후 그때 마침 이태영씨가 고시에 「패스」한 것을 신문에서 읽고 잠재웠던 향학열이 솟아올라 나도 법률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나서서 남편과 친정식구들을 놀라게 했지요.』
그러나 친정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으로 밤잠을설치며 설계한 법률가에의 꿈은 무산되고말았다. 이어 다시 세아이를 낳고 기노르라 정신없이 1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32세에 막내를 낳고나자 슬슬 다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되살아났다.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때는 무엇을 해야좋을지 몰랐어요.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우리집 동네에서 빵만들기 무료강습을 하던「재건국민운동본부」사람을 만났고, 그를보자 요리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지요.』그다음날부터 서울시내 당시 몇군데 있던 요리학원을 찾아 나섰으나 전문적인 요리공부를 할마땅한 곳이 없었다. 일본행을 마음먹고 우선남편의 협조를 얻어냈다. 어렵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35세가 되던 67년 봄 일본동경에 도착,
「에가미」(강상) 요리학원과 「갓뽀」(할팽) 요리학원에 동시 등록했다. 『빠른시일에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자는 욕심에 낮과 저녁강습을 모두 들었어요. 정신없이 바빴지만 충족된 나날이었고, 배우고 싶은 원한을 흠뻑 푼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어쩌다 시간이나면 아이들의 옷을 뜨개질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어요.
1년후 귀국, 68년 요리학원을 냈다. 그후 10여년간 3권의 요리책을 출판했고 지금도 이달말 출간예정으로 있는 요리 「에티켓」책의 준비로 바쁘고 바쁜 나날이다.
『건강만 괜찮다면 60, 70가지도 일을할거예요.』 젊고 활기에 찬 얼굴로 얘기한다. 어느 구석에도 중년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을수 없게 밝은 표정이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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