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타격한다더니 … 대포병레이더 작동 안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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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2일 북한군이 서해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해군 초계함을 포격하는 동안 우리 군의 대포병레이더 ‘아서’(Artillery Hunting Radar)가 멈춰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3일까지도 우리 군은 북한의 정확한 포격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단지 함포 사격이 아니라 북한 무도나 황해도 해안에 배치된 해안포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뿐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아서’는 과부하로 인한 고장 위험 때문에 24시간 가동하기 어렵다”며 “북한이 포격을 예고하지 않았고 심각한 도발 위기도 고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은 그동안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해 ‘원점 타격’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지난해 3월 국방부가 발표한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에도 북한군의 도발 원점을 파악한 뒤 자주포와 전투기 등의 전력을 동원해 타격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도발 원점을 찾지 못하면 대응 시나리오는 시작부터 꼬일 수밖에 없다. 22일에도 K-9 자주포는 가동되지 않았고, KF-16과 F-15K 등의 전투기는 인근 상공을 맴돌기만 했다. 누가 어디에서 포격을 가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해군 함정은 NLL 북쪽 맞은편에 있던 북한 경비정에 보복 사격을 했다.

 이에 합참 측은 “레이더 성능상 급작스럽게 발사된 해안포의 궤적을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 김재윤(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북한군이 실제로 도발할 때 예고하고 하겠느냐”며 “도발 원점 타격이라는 군의 대응전략도 한계를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도발 원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바람에 북한이 포격을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발뺌할 수 있는 빌미도 줬다. 북한은 이날 서남전선군사령부 명의로 “우리가 포탄을 발사하고 제놈들이 대응사격을 가한 것처럼 없는 사실을 꾸며대며 떠들어대고 있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뻔뻔한 거짓말이면서 국제사회의 웃음거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군 당국자는 “중국 어선들이 인근에서 조업 중인데도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도발을 벌인 북한이 중국 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해명성 발뺌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북한군의 포격에 대한 대응 방향을 협의했다. 김관진 국방장관, 윤병세 외교장관, 류길재 통일장관이 참석했다. 공석인 국가안보실장 및 국가정보원장을 대신해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이 참석했다. 22일에는 안보실장·국정원장 경질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안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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