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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 이루는 실화·현장 소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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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 문단에는 완전한 픽션 (허구)이 아닌 실화 소설·사건 소설·현장 소설 같은 것이 크게 「붐」을 이뤄 주먹을 끌고 있다. 특정한 사건이나 개인적인 체험에 힌트를 얻어 그것을 소설화한 예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사건 그 자체를 소설의 형식을 통해 재현시키거나 작가가 어떤 특정한 사회에 직접 뛰어들어 그 분위기를 생생하게 소설화한 것은 별로 볼 수 없었던 일.
여류 작가 박완서씨가 작년에 발표한 소설 『조그만 체험기』가 작가 스스로 겪은 법조계의 부조리를 소설화한 것이라 하여 파문을 던진 바 있거니와 작년말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김승옥씨의 소설 『서울의 달빛 0장』이 모델이 있는 소설이며 이청준씨가 「문예 중앙」에 발표한 『눈길』은 어느 노인이 겪은 실화를 그 노인으로부터 직접 듣고 소설화한 것이라는 것.
그런가 하면 선우휘·이병주씨 등은 실존하는 사람의 이름까지 등장시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원간 문학지 「소설 문예」는 작가에게 취재비를 주어 특정한 사회의 현장을 취재, 작품을 쓰게 하고 있다. 이 기획에 의해 윤흥길씨가 미군 기지촌, 정을병씨가 기생 「파티」, 김용운씨가 「아마트」촌, 구중관씨가 영화 「엑스트러」 사회를 각각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하여 성과를 얻었다.
실화 소설의 경우 작가 자신이 『이것은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고 밝히기 전에는 독자로서는 실화 소설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읽으면서 곧 누구의 이야기인지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서울의 달빛 0장』. 연예계의 조그만 「가십」이었던 영화감독 P씨와 탤런트며 배우인 U양의 결혼부터 이혼에 이르는 과정이 기둥 줄거리라는 것이다.
현장 소설은 특수한 사회 현상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어 쉽사리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장 소설이 실화 소설과 다른 점은 실화 소설에서의 등장 인물에 「모델」이 있는 반면 현장 소설에서의 등장 인물에는 「모델」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는 것. 윤흥길씨의 미군 기지촌 이야기는 「모델」이 있는 경우인데 윤씨는 대학을 중퇴했다는 한 미군 위안부를 이틀동안 취재한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리 문단에서 실화 소설이나 현장 소설이 이처럼 「붐」을 이루고 있는 현상은 오늘날 우리 문학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한 시도로서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또 「사르트르」가 말한바 『「르포」는 곧 문학』이라는데 타당한 일면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러한 형식의 소설에서도 문제작의 수확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학 평론가 김윤식씨 (서울대 교수·국문학)에 의하면 그와 같은 시도가 작가의 소재 빈곤에서 비롯됐을 때 위험하다는 것. 김씨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인데 작가가 지나치게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상상력을 도외시한다면 문학의 본질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또 사건 소설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을 「트루먼·캐포트」의 『냉혈』로 보면서 『그것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있는 사건>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지적, 우리나라에서 이런 유의 소설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작가가 ①「르포」의 철저한 정신 ② 「픽션」의 철저한 정신 ③사건 기자의 철저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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