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칠순의 축구계 원로가 무보수로 어린이 지도-전북구산시 귀암동 채금석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축구계의 원로 채금석씨(70·군산시귀암동113)가 영하의 겨울을 잊고 후배지도에 비지땀을 흘리고있다. 채씨는 같은 축구계의 원로 김용직씨(68)와 한때 우리나라 축구계를 주름잡던 축구인으로 그에게 붙여진 이름은 「오토바이」. 이같은 채씨가 군산제일중·고교에서 아침·저녁마다 이 학교운동장에서 후배지도에 노익장을 과시하고있다.
이학교의 무보수 「코치」인셈. 학생들은 「축구할아버지」로 부르며 몸놀림·발놀림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펑』 『펑』 -백발의 칠순 노인과 젊은 학생들이 차는 공이 힘차게 하늘로 치솟는 모습에 보는 이의 가슴도 후련해진다.
자상하게 하나하나를 타이르던 아버지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질때면 학생들은 움찔,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의 호령에따라 잽싸게 몸을 놀리고 또 달린다.
채옹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축구에 몰두해 있었다.
조부님의 소원인 동경유학이나 조부의 천석재산에도 눈을 돌리지않고 축구에만 전념, 40세까지 현역선수로 뛰었고 은퇴후엔 후진양성에 몸바쳐 왔던 것.
전북지방의 축구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한때 어린 후진들을 자기집에 하숙시키며 자신이 익힌 기량과 경험을 가르쳐 왔었다.
그가 길러낸 후배만도 전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재모선수(31·현 포항제철) 4형제와 유동춘선수(23·해군), 남대식선수(30·국민은행)등 국가대표급 선수10여명에 청소년 대표선수 10명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선수만도 50여명에 이른다.
서울경신중 재학때는 부모 몰래 축구선수로 뛰다가 들켜 고향인 군산으로 끌려가기도 했으나 다시 빠져나와 몰래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는등 일화도 수두룩했다.
이때에 김용식씨가 2학년으로 축구선수였다고 채씨는 한국축구사의 발자취를 틈나는대로후배들에게 알려주기도한다.
또 이때 경신축구「팀」이 일본의「와세다」대「팀」·보성전문· 연전「팀」을 연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1936년 경성축구단 선수로 뛸 때 「베를린·올림픽」출전 전일본 대표선수 선발경기에서 일본최강의「게이오」「팀」을 2대0으로 격파한 이야기에서는 젊은이못지않은 상기된 얼굴에 열을 뿜는다.
제자축구선수들은 내년에 군산종합경기장「메인·스타디움」이 완공되면 스승 보은축구대회를 열것을 계획하고있다.

<군산=현금화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