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생활도구 수집|이달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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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속을 학문적으론 모르지만 10년간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에 그것은 내 향수의 표현이고 생활의 알맹이처럼 됐다.
지난 11월 집 안에 조그만 민속관을 차렸더니 여러모로 공부가 되어주었다. 공개 전시는 반드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들어서 배운다든가. 지도 받는 데 유익한 일임을 알았다.
그 동안 모은 것은 민예품이 아니라 한국농촌의 생활도구. 곧 민구라 하는 편이 알맞다. 10년 전 비당저수지로 낚시 나갔다가 도리깨를 얻어온 것이 그 시초였다.
수집한 2천점의 대부분은 각 지방에서 그렇게 모아진 것들이다. 행주고리·매통·넉가래·씨아·돌솥 등 「버스」에서 괄시도 많이 받고 욕도 당한 것들이어서 누가 교환하자고 제의해도 그 점만은 특례를 만들 생각이 없다.
동란 중 부모·형제와 고향을 남겨두고 홀홀단신 남하한 실향민이다. 고향은 평양이지만 어려서 농촌에서 자라 쟁기질도 해보았다. 그런 어린 날의 기억 때문에 「민속」은 지금 가족을 생각하고 향수를 달래는 모체가 되고 있다. 그 속에 묻혀있으면 은연중 체온을 느끼고 숨소리를 듣는 것 같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와 시장에서 땅콩장사·담배장사·철물점 등 잡다한 장사를 했고 교육영화를 만든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모두 실패한 끝에 인현동에서 자그마한 여관을 잡은 게 오늘의 기초가 됐다. 꼭 지방손님만 상대한 것이 성장의 「키」가 됐다.
『나라는 빼앗겨도 문화는 빼앗길 수 없다』는 오세창 선생의 말씀을 늘 되새긴다. 민중의 생활·민중의 문화를 밑바탕으로 삼는다면 어디서나 불변하는 기틀이 되리라 신념을 갖고 있다.
비록 음식점에 불과하지만 우리 민구의 「디자인」으로 장치하고 또 한 귀퉁이에 민속관이라 전시실을 마련한 것은 그런 신념의 일단이다. 이것만은 뜻있는 일이 되게하고 개방해서 가꾸고 싶다.

<이달범>(46세·평양 태생·국민대 법과졸업·식당 및 여관 「신성」경영·서울 을지로 4가 310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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