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소유 상한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화당 정책위는 농지 소유 상한 철폐 등을 골자로 하는 농지 관계법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검토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농지 상한제의 철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뜻을 갖는 것이다.
현실은 어떻든간에 농지는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농가 당 3정보 이상의 소유가 금지되어 있다. 이 3정보의 상한선은 49년 제정된 농지 개혁법에 배경을 두고 있다.
농지 개혁법은 농가 경제의 자립과 농업 생산의 증진을 위하여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분배한다는데 목표를 둔 것이다.
이 3정보의 상한선은 근년에 들어 농업의 기계화 및 기업화에 장애가 되므로 이를 철폐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으나 농지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법적으론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원칙적인 방향으로 볼 땐 농지 소유의 상한제 철폐는 필요하며 또 언젠가는 단행돼야 할 것이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여 국제 경쟁을 가능케 하고, 농업도 하나의 기업으로서 발전할 수 있게 하려면 경지 규모의 확대와 기계화가 이뤄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가 당 경지 규모는 평균 0.95정보에 불과하며 1정보 이하의 농가가 전 농가의 67.8%나 된다.
이러한 농업의 영세성으로 농업의 근대화나 능가의 기업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공화당이 상한제 철폐를 구상하게 된 것도 이런 추세를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농지 상한제의 철폐가 아무리 옳은 방항이라해도 그것을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농지가 갖는 비중과 일반적 인식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겠다.
오랜 농경 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국에선 농지는 단순한 생산 수단 이상의 것이며, 이를 경제적 효율만으로 가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농업은 전업성이 극히 적고 채산이 안 맞는다고 해서 간단히 폐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의식 구조 속엔 농지는 통상적 기준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무엇이 있다.
이런 무형의 압력이 있기 때문에 실제론 상한제가 많이 붕괴되었지만 법적으론 온존되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총 농경지는 2백24만ha인데 농사를 짓는 농가는 2백34만 호나 된다. 농경지를 1정보 이상 갖고 있는 농가는 전체의 32.2% 밖에 안 된다.
또 농업 인구가 전 인구의 35.7%나 된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농경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3정보 상한제를 철폐할 때 상대적인 농가의 영세화가 더 심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특히 대도시의 자본이 농촌에 들어갈 때 경자유전의 원칙이 과연 존속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농가가 경제적 열세 때문에 이농을 강제 당하는 사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현재 농촌 인구가 전 인구의 35.7%나 되지만 농업의 GNP 비중은 20%선에 불과하다.
이러한 농업부문과 저생산성과 과밀 인구를 해소하기 위해선 제조업 등 다른 부문의 발견에 의한 농촌 인구의 흡수가 선행돼야 한다.
그 동안의 공업화 과정을 통해 농촌 인구가 공업 등에 많이 흡수되었지만 앞으로는 이것이 더욱 촉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농촌 인구의 감소와 병행하여 점진적인 경지 규모의 확대가 이뤄지는 것이 가장 소망스럽다.
따라서 농지 상한제의 철폐는 단지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공업 발전 여건 등과 밀접한 관련 아래 추진돼야 할 성질의 것이다. 농지 소유 상한제 철폐가 지향하는 진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이 같은 여러 여건들을 함께 감안한 점진적인 접근이 소망스럽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