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빚에 몰려 집 쫓겨날 인간문화재 심부길 옹에 동료들 성금 백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빚에 몰려 길거리로 쫓겨나게 된 한 인간문화재가 동료 인간문화재들의 성금으로 집을 되찾은 흐뭇한 화제가 눈발 날리는 세모의 거리를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무형 문화재 보호 협회 (이사장 성경린)는 1일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20여명의 지정 인간문화재들이 회의를 갖고 즉석에서 1백8만원을 모아 부채에 몰려 쫓겨나게 된 심부길 옹 (무형문화재 54호·「끊음질」의 기능보유자·71세·서울 금호동 3가 1554)에게 전달했다.
이날 모금하게 된 사연은 성 이사장 (무형문화재 1호)이 심 옹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제안한 것인데 가야금 병창의 박귀희 여사 (무형문화재 23호)가 부채의 원금인 45만원을 내놓았고 29호 서도 소리의 김정연 여사가 10만원, 38호 궁중 요리의 황혜성 여사가 3만원, 22호 매듭의 김희진 여사가 3만원, 3호 꼭두각시놀음의 남형우씨가 1만원, 그리고 경기민요 기능보유자 일동이 5만원과 35호 조각장의 솜씨를 배우고 있는 전수생들이 내놓은 10만원은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한편 협회에서는 20만원을 더 보태어 무형문화재가 지정되기 시작한 61년이래 처음 흐뭇한 화제를 낳았다.
「끊음질」이란 나전칠기의 한 기법. 소라·전복의 껍질을 실처럼 잘라내 끊어가면서 갖가지 무늬를 놓는 자개 일이다.
심 옹은 연로한데다가 아주 영세한 가내 수공업으로 남의 주문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을 이어 왔다. 그의 주택은 금호동 산마루 가까운 비탈의 조그마한 「시멘트·블록」 집.
성 이사장은 『대부분의 인간문화재들이 너무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터이지만, 같은 사람끼리 서로 도와 의지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능보유자들에 대하여 문화재 관리국은 50세 이상에 한해 월 4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나 그들의 제작 생활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