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 행위자의 재산 몰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와 여당은 해외에 거주하는 반국가 행위자의 국내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사실 김형욱과 같이 권세를 누릴 대로 누리고도 부족해 종당에는 국가를 배신한 자에게는 재산뿐 아니라 더한 것도 박탈했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그런 자가 많은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켜 호의호식하고, 연금과 상훈까지 누리는데 분노하지 않을 이 나라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나라가 민주 국가인 이상, 만사가 원색적인 국민 감정대로 처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정의 기본 바탕은 국민 감정을 존중하는데 두더라도 그 구체적인 실현 방법과 과정은 감정이 아닌 이성과 적법 절차에 의해야 한다.
우리는 4·19 이후 국민 감정이라 해서 소급 처벌을 위한 개헌을 했던 것이 나쁜 전례가 되고만 뼈아픈 회한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 지평에서 이러한 회한을 거듭하기 않기 위해서도 국민 감정을 법으로 반영하는데는 심사 숙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여당의 특별 조치법 제정 구상에는 재검토되어야 할 점이 허다한 것 같다.
우선 이러한 발상의 동기가 된 「국민 감정」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있어야 하겠다.
김형욱 같은 자의 재산을 몰수해야겠다는 국민 감정은 조국을 배신한 자가 바로 다름 아닌 권세를 누릴 대로 누리던 자라는데 더욱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재산이 정당한 재산일수 없다는 의혹이 그 저변에 깔려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리고 시안의 구체적 내용 중 법무부에 설치된 특별기구의 결정 등으로 재판 없이 재산을 몰수하도록 한다는 것이 문제다.
과거 부정 축재 회수의 경우와 반민 특위 때 이 비슷한 전례가 있긴 하나, 그 때는 헌법의 명문, 또는 적어도 혁명하 헌법적 효력을 갖는 비상 조치법에라도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도 전혀 다르지 않은가.
사소유권의 보호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다. 그래서 현행 우리 나라의 법 제도에는 재판을 통해서도 전 재산을 포괄적으로 몰수하는 경우는 없다. 하물며 사유 재산을 재판도 없이 행정부의 단독 결정으로 몰수하려는 시도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 헌법 32조,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24조, 포괄적인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강한 헌법 32조의 명문 규정과 정신에 비추어 위헌론이 제기될 여지가 많다.
부재자에 대한 궐석 재판이 인정되고 있는 서독과 「프랑스」의 형사 소송법에도 재산의 몰수가 아닌 압류와 국가 관리만이 인정되고 있다. 그것도 법원의 결정이나 판결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전시 적 국민 재산 징발의 경우라도 몰수가 아니라 기껏해야 보상이 전제된 압류·처분 정도의 조치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전시의 적 국민에게도 그렇거늘 아무리 반국가 행위자라 하더라도 재산의 압류·동결이 아닌 몰수까지는 법 이론상 무리가 아니겠는가.
또 재산 몰수의 구성 요건이 되는 「반 국가 행위」라는 개념의 모호성이다. 원래 반 국가와 반정부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란 어려운 것이어서 결국은 헌법 정신에 따라 입법과 재판에 의해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역시 궐석 재판일 망정 재판이란 절차가 완전히 생략될 수는 없다.
그리고 설혹 이 법 제정이 국내적으로는 국민적 합의와 정당성을 갖춘다 하더라도 몇몇 배신자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특별 조치법까지 제정하는 사태가 미칠 국제적 「이미지」도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런 여러 면을 감안할 때 정부·여당의 특별 조치법 구상은 현행 법률의 부분적 손질 정도로 축소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어도 특별 조치법 시안에 재판을 거치도록 하고, 재산의 「몰수」를 압류·관리로 수정토록 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