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정보 기관 작성|대미 공작 계획 공개-프레이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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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미 하원 국제 기구 소위(위원장「도널드·프레이저」)는 29일 박동선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도피한 전「뉴욕」주재 영사 손호영과 이정식 교수(「펜실베이니아」대)·김영진 교수(「조지·워싱턴」대)·「앨런·크로스」(미 국방성 직원)·「스티븐·리더」(미 국방 정보「센터」직원) 등 5명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이 청문회는 30일에도 손과 미 국방 정보 「센터」책임자 「진·래러크」 퇴역 제독으로부터 증언을 듣는다.
29일 청문회에서 「프레이저」위원장이 한국 정부 기관이 작성한 「76년도 대미 공작 계획서」라는 24「페이지」짜리 문서를 공개했는데 이문서는 2급 비밀로 76년초 당시 주미 공사 김영환씨가 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서의 내용은 북괴의 남침 방지와 함께 미 의회·백악관·국무성·국방성 등 행정부·언론계·학계·종교계·교포 사회 등에 대한 공작의 목표와 추진 방안·포섭 대상자 및 대상 단체의 이름·소요 자금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공작이 실천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으나 「프레이저」소위는 이 계획의 총 소요 자금이 75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다.
「프레이저」의원은 한국 정부 기관의 그런 활동을 『공공연한 전복 행위』(Outright Subversion)이라고 주장했다.
손호영은 「프레이저」의원의 기대에 어긋나는 증언을 했는데 예를 들면 손은 대미 공작 계획이 작성됐을 때는 이미 박동선의 이름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 시작한 때로 상식으로 판단해서 자기는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손은 그 계획이 한국 정부 기관의 계획이라기보다는 미국내 한국 기관의 책임자가 자신의 활동을 과대하게 보고하는 수단의 하나로 이름을 알고 있는 많은 인사들을 모두 포섭 대상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은 「유엔」 주재 북괴 대표단이 미 의원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들은 한국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은 북괴측이 미학계에까지 침투했는지는 모르지만 교포 사회에 침투했다는 증거는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손은 공작 계획에 나타난 선물이 반드시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사교적인 성격이 더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은 지난9월16일 도피할 때 공금을 자기 은행 구좌에 넣었는데 그것은 한국 정부에 수표로 반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했다.
「프레이저」위원장에게 이번의 조사 결과를 선용할 것을 촉구하고 하원 국제 관계위가 미·일 친선협회와 같은 한국 연구 지원 기구를 설치할 것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김영진 교수는 외국인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활동을 한 것을 나쁘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런 활동을 하지 앓는다면 오히려 직무 태만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다만 한국의 방법이 덜 세련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와 김 교수는 이날 소환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프레이저」소위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나왔다고 말했다.
「스티븐·리더」씨와 「앨런·크로스」씨는 한국 정부 기관이 자기들의 근무처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증언했다.
「클로즈」씨(국무성 정책 연구실·전 주한 미대사관 근무)는 서울에서 한국 여배우를 소개받는 등 『공작 대상이 된 것 같은 일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번 청문회는 30일에 끝나는데 손호영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한국 정부가 시도했던 협상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3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증언석에 나선 손은 초췌한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쓰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증언했으며 전 해군 참모 총장 김영관씨 등이 방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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