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관중에게 길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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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제나라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누가 재상감이오?” 관중은 딴청을 피운다. “임금만큼 신하를 아는 이가 있겠습니까?” 노회한 재상한테 별수 없이 군주가 먼저 속을 꺼낸다. “역아는 어떻소?” 역아는 아들을 삶아 임금의 병 치료에 쓴 인물이다. 그만큼 굳은 충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중은 고개를 젓는다. “아들을 죽여 임금을 모시는 건 인정이 아닙니다. 그는 안 됩니다.”

 “개방이 좋을까요?” 개방은 부친상을 당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환공을 보좌했다고 한다. “어버이를 등지고 임금을 모시는 건 인정이 아닙니다. 곁에 둘 인물이 아닙니다.” “그럼 수조는 어떻겠소?” 수조는 환공을 모시기 위해 스스로 환관이 됐다. “임금을 가까이하겠다고 거세를 하는 건 인정이 아닙니다. 멀리하십시오.”

 상식을 넘어서는 충성은 믿을 수 없으니 가까이 두지 말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관중이 죽자 환공은 이들 셋에게 전권을 주었다. 결과는 다 안다. 셋은 환공을 굶겨 죽였다.

 우리의 대통령은 이번에 참 놀랐을 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비난 화살이 자기한테 날아오는 데 기가 막혔을 테다. 그런 고질 뿌리 뽑으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데 물러나라니 서운하기도 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을 터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실패한 부메랑은 던진 사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테다. 얼굴마담 총리는 대통령을 위해 물병 맞는 데 기껍지 않다는 걸, “우리나라는 큰일만 터지면 대통령을 공격한다”는 엄호사격이 사실 거꾸로 쥐고 쏘는 총이란 걸 느꼈을 일이다. 그래서 내가 안 나서면 아무 일도 안 되고, 그것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라는 것을.

 그런 대통령을 위해 관중의 충고는 시공을 떠나 유효하다. 엽기적인 사례를 오늘날 대한민국에 맞게 바꾸면 이런 대화가 될 수 있겠다.

 대통령이 현인에게 물었다. “누가 총리감이지요?” 현인이 되묻는다. “염두에 둔 사람이라도 있으신지.” 대통령은 수첩을 꺼내 든다. “김명단은 어때요?”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중용하려고 적어뒀던 인물이다. 현인은 고개를 젓는다. “아는 사람 중에서만 고르면 인재를 찾지 못합니다.”

 “이필기가 좋을까요?” “지시를 받아쓰기만 하는 사람은 지시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럼 박찬양은 어떤가요?” “떠받들기만 하는 사람은 내려놓을 때도 제일 먼저 손을 떼는 법이지요.”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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