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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해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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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 당국은 지난 8월12일 1백8개 품목의 최고 가격을 푼데 이어 3일 다시 47개 품목의 공장도 가격과 43개 품목의 도매 가격에 대한 최고 가격을 해제했다.
이러한 가격 동결의 해제가 행정력에 의한 가격 억제를 풀어 시장 기능에 점차 맡기겠다는 뜻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며, 또 그것이 물가 정책의 정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2차 해제 품목의 선정 기준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품목은 유사 품목간의 균형을 갖추지 못해 공정 경쟁을 저해할 요인도 없지 않다. 이런 몇가지 문제들은 해제의 기준을 너무 획일적으로 정한데도 이유가 있다. 시장 점유율 50∼70% 이상이라는 기계적인 기준에 너무 억매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최근의 물가 진정은 주로 낮은 쌀값에 주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가중치가 높은 쌀값의 하락은 물가 지수 안정에 큰 기여를 할 것이나 그것을 안정 기조의 정착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저곡가에 의한 물가 안정이 장기적으로 보아 과연 소망스러운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최고 가격 등 행정 규제에 의한 물가 억제는 일종의 응급 요법이므로 길게 끌고 가서도 안되고, 또 오래 지탱 될 수도 없다. 거의 전 품목에 걸쳐 투망식으로 뒤집어 씌워 물가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인 것이다.
가격 동결이 실효를 거두려면 「코스트·푸시」 요인의 제거와 병행하여 시한적이어야 한다. 선진 제국의 소득 정책의 정석은 임금과 가격을 동시에 동결하는 것이다. 기간도 짧고 철저한 총수요 억제책이 강행된다. 그러나 소득 정책의 실효에 대해선 논의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의 가격 동결은 행정력에 의한 물가 억제 수단으로 남용된 감이다. 거의 전 품목에 걸친 투망식 동결은 그에 상응하는 빈틈없는 감시·단속·규제가 따르지 않는 그 효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빈틈없는 행정력의 발동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나라와 같이 막강한 행정력으로써도 실제 물가 단속엔 맹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천차만별의 거래나 경제 순환용 행정력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물가에 대한 행정 통제는 그 폭이 좁을 수록, 또 기간이 짧을 수록 좋다. 다시 말해 자유 경제 체제의 기본 바탕인 시장 기능에 가능한 한 맡겨야 한다. 그 동안의 경험에서 본바와 같이 수요·공급의 원칙을 무시한 일방적인 규제는 이중가와 품귀라는 부작용을 빚는다. 진정한 물가 안정은 정해진 값으로 물건을 마음대로 살수 있는데 의의가 있다.
아무리 최고 가격이 싸도 물건이 없거나 웃돈을 안주면 살 수 없어선 무슨 뜻이 있겠는가. 그런 예가 부가세 실시 후 매우 많아 졌고 지금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중가나 뒷거래는 부가세의 근본 바탕인 성실 신고와 납세를 근원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부가세 실시를 보완하기 위한 응급 조치가 오히려 부가세의 정착화에 방해가 된다는 역설도 낳았다.
시장 기능을 외면한 가격 억제엔 한계가 있다. 행정력에 의한 가격 동결엔 엄청난 「코스트」가 들고 가격 기구의 마비·왜곡을 가져온다. 단기간의 가격 안정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인 안정 기반의 조성엔 유해할 수도 있다. 가격 억제의 장기화는 원활한 물량수급을 방해하여 대폭적인 가격 인상으로 폭발되는 사례를 이제까지 여러번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남아 있는 동결 품목도 서둘러 푸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현재 물가 안정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잉 통화의 흡수·외적 압력의 해소·경쟁 체제의 활성화라 볼 수 있다. 「달러」와 「링크」된 우리 나라는 최근의 「달러」하락으로 실질적인 평가 절하 효과를 빚어 물가 압력을 더 받게 되었다. 이미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원자재 값이 올랐다. 또 통화 안정이나 원가 절감 경쟁을 자극하기 위한 여건 조성에도 너무 등한한 것 같다.이러한 물가 안정의 근본적인 접근을 소홀히 한 채 말초적인 행정 규제를 강화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가 정책의 정도를 다시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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