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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의 간접 공격|미국은 왜 ILO를 탈퇴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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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터」 미 대통령이 국제노동기구 (ILO)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한 것은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그 자신의 의사에 반해 운영되는 「유엔」 산하 국제 기구에 대한 규제와 견제가 가능한 것인지를 실험하는 첫 기회가 될 것 같다. 동시에 그것은 낡은 국제 질서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카터」 대통령이 「유엔」의 전문 기구인 ILO에 도전함으로써 「유엔」 자체에 대한 공격 개시의 신호를 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탈퇴 강행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6월 ILO총회에서 공산국과 개발도상국가들이 제휴하여 미국 대표단이 내놓은 소련 및 일부 제3세계의 노동 조건을 규탄하는 보고서의 채택을 거부한데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ILO에 대한 미국 영항력 감소 추세와 미국 내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친 「이스라엘」 유대계의 압력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1백35개 회원국을 가진 ILO는 분담금의 25% (연 2천만「달러」정도)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소련과 그 세력 권내에 있는 공산국 및 「아프리카」「아시아」 제3세계의 지배하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ILO 총회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 성토가 벌어지는 극단적인 정치 선전장으로 변질되어 왔다.
미국은 이미 70년과 71년에 분담금 납부를 잠정적으로 보류함으로써 그 불만을 표시, 창설 정신에로의 복귀를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사태는 미국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진행되어 74년에는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이 채택됐고 75년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 에 「업저버」 자격까지 부여했다.
당시 「포드」 행정부는 2년 유보 조건으로 ILO 탈퇴를 통고했었다.
그 동안 미국은 ILO의 체질 개선을 위해 여러가지 압력을 넣었고 일부 회원국도 개혁 방안을 논의했지만 소련과 제3세계 세력이 지배하는 현재의 ILO로서는 난망지사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내 일부 여론은 ILO에 대한 응징의 표현으로 탈퇴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밴스」 국무장관이나 「브레진스키」 보좌관 등 대외 정책입안자들이 잔류를 종용한데 비해 「레이·마셜」 노동장관이나 미 노총산별회의 (AFL-CIO)·미 상공회의소 등 업계에서는 탈퇴를 주장한 것은 경제계를 지배하는 유태계의 압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시사한다.
「발트하임」「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전체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단견적인 처사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속셈은 이미 ILO와 같은 미국의 영향력이 거의 작용되지 않는 국제기구로부터 탈퇴함으로써 국내 여론을 만족시키는 한편 시대에 뒤떨어진 국제기구 운영 방식 내지 국제 질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의 하나로 봐야할 것이다.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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