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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애국가' 100년만에 무대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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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國歌)인 '기미가요'의 편곡자,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1902)의 작곡자, 한국 관악(管樂)의 아버지….

독일 출신의 해군 군악대장으로 1901년 우리나라에 초청을 받아 한국의 양악(洋樂)발전에 크게 기여한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다.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인묘지에 잠들어 있는 에케르트가 고종 황제의 명을 받아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가 1백년만에 연주회 무대에 오른다.


프란츠'에케르트(왼쪽)가'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의 표지.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윈드앙상블(음악감독 서현석)의 특별 공연에서'대한제국 애국가' '다이코센 행진곡'등 에케르트의 작품이 관악합주 편성으로 연주된다.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皇帝)를 도우소서'로 시작되는 이 애국가의 가사는 민영환이 썼다. '신이여 여왕을 도우소서'로 시작되는 기도문 형태의 영국 국가와 유사하다. 1902년 8월 15일 공식 제정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악보 5백부를 인쇄해 50여개국의 외국 공사에 배포했고 1년전 덕수궁에서 열렸던 고종황제 탄신 축하연에서 초연되었다.

1896년 민영환 특명공사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후 돌아와 고종에게 군악대 창설을 건의했다.

에케르트가 이끌던 시위연대 군악대는 1907년 일제에 의한 한국군 강제 해산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이왕직(李王職)양악대로 되살아난 것도 잠시뿐, 민간단체인'경성악대'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 최초의 관악합주단이었던 경성악대는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매주 1회 시민을 위한 무료 음악회를 열었으며 거주하는 외교 사절을 위한 음악회에 출연했다. 단원들은 영화음악.대중음악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브라스 밴드 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국가를 서양식 악보 표기법으로 편곡했던 에케르트는 한국에서도 이왕직(李王職) 아악대(현 국립국악원)에 서양식 기보에 의한 국악 채보법을 가르쳐 주었다. 한양합주(韓洋合奏)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피아노.바이올린.작곡 등의 개인 교습으로 원로급 음악인들을 지도했다. 02-583-9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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