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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소방행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대문 시장에서 또 큰불이 일어나 1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피해를 내고 진학작업에 나섰던 소방부대장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빚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3년간 같은 장소에서 5번이나 되풀이 된 똑같은 인재에 의한 대형화재라는 점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불이 날 때마다 한바탕 떠들썩하다가도 얼마 안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철저한 방화대책을 게을리 함으로써 화재는 횟수를 거듭하고 막대한 재산들을 회진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정으로 그 재화의 원인을 분석하여 발본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고 취약점을 제거하는 슬기를 보였던들 똑같은 참사의 반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듭되는 시장화재는 말할 것도 없이 감독기관·건물주·상인의 3자가 함께 방심하고, 함께 법에 정해진 방화시설의 구비마저 소홀히 해 온 타성의 부산물이다.
누전의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규격이하의 전선을 끌어들여 점포마다 10여 개씩의 전등을 마구 켜 놓고 있는 상인들이나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소방장비로 눈가림 식 시설을 해 놓고 있는 건물주의 비 양심이 지단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더욱 문제시돼야 할 것은 불씨가 도사린 화재취약점을 점검하고도 그 철저한 시정을 눈감아주고 있는 소방행정의 부재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불이 난 남대문시장 C동은 지난해 8월19일과 11월29일, 그리고 지난 5윌6일과 8월4일 등 최근에만도 네 차례에 걸쳐 소방시설이 미비 된 것으로 적발됐었다.
그러나 소방당국의 이 같은 점검은 언제나「지적」으로만 끝났을 뿐, 매양 그 시정을 위한 철저한 보완조치의 이행은 미온적으로 얼버무렸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시정지시를 받고도 그 자리만 모면하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법에 의한 소방의무부과의 공신력마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엉터리 소방시설부실공사·무허가시설들이 그럭저럭 용인되고 묵인되는 따위, 지금까지의 행정작태가 발본색원되지 않는 한 이 순간에도 다시 제6, 제7의 시장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하다.
사대의 심각성에 비추어 이제 우리소방당국은 지적사항과 개선명령을 이행치 앉는 건물주나 상인에 대한 행정고발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행정법상 대집행을 강행한 후 그 비용을 강제 징수하는 방안 같은 적극적인 대책도 불사해야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국민들의 생활주변에는 도처에 새로운 화재의 요인이 엄청나게 쌓여 가고 있다. 이른바 연료의 현대화로 도시민들은 하루도 휘발성이 높은 유 류나「가스」연료의 사용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이와 함께 건물 및 주거의 고층화 경향에 따라 도처에 발화요인이「정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재의 성질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방비나 소방정책도 그만큼 새롭고 철저하게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까지 써 온 소방용 사다리 차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 효용높이는 32m로 기껏 10층 이하 건물에 대해서밖엔 쓸모가 없다. 물 탱크 차도 화학불길이나 유 류에 붙은 불길 앞에는 무력하다.
이번 화재의 경우에도 화학물질이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때문에 소방관들은 연기 속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지 않은가. 이것은 바로 앞으로의 소방정책의 중점이 예방 제1주의와 더불어 철저히 현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재해예방대책에서 그러하듯, 방화대책에 있어서도 평소부터의 빈틈없는 안전점검과 이에 따른 미비점의 즉시 적 보완을 이행하는 능동적인 행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유형의 대화사건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작태조차 바로 잡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오랜 문화전통을 과시한다 해도 아직 현대적 시민으로서의 소양에 있어 크게 낙후된 국민이라는 평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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