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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는 북괴 비행장 2-3개 폭격 제의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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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닉슨」전 미국 대통령은 69년 「닉슨」행정부 출범 직후 미 EC121 정찰기가 북괴에 의해서 격추 됐을 때 당시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키신저」가 북한 안의 2, 3개 공군기지를 골라서 폭격하자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닉슨」은 「네이비드·프로스트」와 가진 「워터게이트」사건에 관한 다섯 번째이며 마지막 「텔레비전·인터뷰」에서 세상 사람들이 「키신저」를 온건파, 「닉슨」자신을 강경파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을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이 설명했다.
다음은 EC121 정찰기 피격 사건 때 「키신저」의 태도에 대한 「닉슨」의 이날 발언 내용이다.
『「키신저」가 기본적으로 온건파이고 내가(닉슨) 강경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의 사고의 방향을 모르는 사람이다. EC121 정찰기가 북괴군에 의해 격추 됐을 때 「키신저」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 나는 거의 북괴에 대한 폭격을 명령할 뻔했다. EC121은 무장을 하지 않은 경찰기고 공해에서 격추된 것이다. 모든 승무원은 실종됐다. 나한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것에서부터 북괴의 2∼3개 비행장을 폭격하여야 한다는 건의들이 제시되었었다.
「키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련이나 북괴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만약 소련이 우리를 시험하지 않았더라도 북괴와 중공 및 월맹은 우리가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주시할 것이다. 우리는 강경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키신저」는 북괴의 비행장 2∼3개를 없애는 방안을 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키신저」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윌리엄·로저즈」국무장관과 「멜빈·레어드」 국방장관은 이제 막 취임한 우리 행정부가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폈다. 서울 주재 우리 대사도 그것은 과오라고 믿었다. 그는 우리가 북괴의 비행장을 폭격하면 김일성이 자체의 결단으로 반격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하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바로 그 때문에 나의 조치는 지연됐다. 결국 나는 강경 노선의 입장을 취하지 않기로 했다.
소련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우려하지 않았다. 나는 중공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해 걱정했다. 어쨌든 우리는 한국에서 중공과 전쟁을 한 일이 있다. 모택동의 아들 하나가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일이 있지 않은가? 모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걸 알고 우려했었다. 강경책을 쓰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북괴 공군기지의 폭격이 전쟁을 확대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베트남」전 하나에 개입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더욱이 중공과 소련이 개입할 가능성이 충분한 전쟁을 또 하나 치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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