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새벽 도쿄지진 … 6분 뒤 총리관저에 통제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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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휴일이던 지난 5일 새벽 5시18분, 도쿄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NHK 등 방송들은 곧바로 재난방송 체제에 돌입했다. 지진의 진앙은 도쿄 남남서쪽 80㎞ 해상, 도쿄의 최대 진도는 5(7이 최고)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뒤 최고치다. 골든 위크로 불리는 장기연휴 기간 새벽이었지만 일본은 매뉴얼대로 돌아갔다. 발생 6분 만인 5시24분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대책실이 꾸려졌다. 주변 원전 상황을 비롯한 각종 정보가 취합됐다. 고속도로는 곧바로 최고속도가 시속 80㎞ 또는 50㎞로 제한됐다. 신칸센 등 열차들도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운행이 중단되거나 감속 운행됐다. 진도 5 이상의 지역에선 자동적으로 가스공급이 정지되는 시스템도 오차 없이 작동했다. 17명이 다쳤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이런 일사불란함은 과거 대형 재해에서 배운 게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게 1995년 1월 17일 오전 효고(兵庫)현 고베(神<6238>)시와 아와지(淡路)섬 주변을 강타, 6434명의 사망자를 냈던 한신대지진(고베대지진)이다. 일본의 지진 대응 체제는 이 지진의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대변혁이 있었다. 시급한 분야엔 빨리 칼을 댔고, 10년에 걸쳐 6개 분야 54개 테마로 나눠 장기적인 검증·분석 작업도 병행했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한신대지진 때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지진이 발생하고 14분 뒤 우연히 NHK 뉴스를 보고야 지진 발생을 알게 됐다. 비서관의 보고는 발생 1시간44분 뒤 이뤄졌다. 알맹이도 없었다. 최대 진도가 7에 달한다는 보고가 정부에 도착한 것도 지진 발생 35분 뒤였다. 재난 컨트롤타워 마비에 놀란 일본은 대대적 개혁에 착수했다.

 이듬해 4월 총리관저에 위기관리센터가 설치됐고, 5월엔 24시간 태세의 내각정보집약센터도 생겼다. 1998년엔 총리실에 해당하는 내각관방에 내각위기관리감이라는 자리가 생겼다. 하루 종일 방재만 생각하는 역할이다. 지방정부들은 지진 발생 10분 내에 진도·피해규모를 추계하는 ‘지진피해추계 시스템’을 정비했다. 하이퍼레스큐로 불리는 소방구조기동부대와 광역긴급원조대, 긴급소방원조대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발족됐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인프라 정비였다. 절반 이상 주저앉은 건물이 24만9000여 개 동에 이르고, 주요 고속도로도 힘없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지진 뒤 고베시의 목조건물 밀집촌은 내진설계의 현대식 주택지로 개조됐다. 고속도로의 철근 강도는 3배 단단해졌고 교각 기둥의 폭도 2배로 늘었다.

 시스템 정비의 진가는 18년 뒤 나타났다. 2013년 4월 13일 한신대지진과 비슷한 진앙에서 규모 6.3의 아와지섬 지진이 발생했다. 효고현은 곧바로 주민들에게 대피 지시 문자를 발송했고, 피해 추계 시스템에 따라 취약지역엔 구호 물자가 속속 도착했다.

지진이 발생하고 1시간 뒤에야 현청의 직원이 출근하기 시작했던 18년 전과는 정반대로 직원의 90%가 1시간 이내에 출근했다. 18년 전 가옥의 80%가 무너진 곳도 ‘불과 기왓장 몇 장 깨지는’ 수준으로 지진을 버텼다. 30여 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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