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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 네 손의 속삭임 실력보다 배려·애정이 먼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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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음대가 그래요?”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묻는다. ‘밀회’ 때문이란다.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나도 본방사수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은밀하고 강렬하다. 자극적인 소재, 대본, 연출, 연기 나무랄 데가 없다. 거기에 더해 가슴을 파고드는 피아노 음악까지. 연주자들의 근성과 알력 다툼은 물론이고 음대 학생들이 비싼 악보를 복사하는 노하우 등 음악계의 일상에 대한 디테일은 음대 교수인 나조차도 깜작 놀랄 정도다. 역시 인기가 많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특히 김희애와 유아인의 피아노 듀엣 연기는 압권이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 듀엣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악기와 호흡을 맞출 때는 역할 분담이 간단해서, 피아노는 화성을 맡고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이 선율을 담당하는 것이 정해진 공식이다. 역할에 따른 쓸데없는 신경전이 필요 없다. 게다가 활을 긋거나 관을 부는 것은 음이 시작되는 순간이 길기 때문에 피아노가 적당하게 보조를 맞추어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이에 비하면 피아노 두 대로 연주하는 듀엣은 어렵기 짝이 없다. 피아노끼리 연주할 때는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이 둘 다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연주자끼리 호흡이 정말 잘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피아노 듀엣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피아니스트들 사이의 경쟁의식이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치고 경쟁의식이 없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은 더 치열하다. 경쟁 때문에 연주가 흥미로워질 수도 있지만 경쟁하다가 연주를 망칠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일까? 작곡가들은 피아노 듀엣곡을 만들 때 서로 솔로를 주고받으며 협주를 해나가는 콘체르토 형식으로 작곡한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는 협연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솔로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뽐낸다. 경쟁과 협력의 조화다. 경영에서는 그것을 코피티션(copetition)이라고 한다던가. 콘체르토의 어원(concertare)이 라틴어로는 ‘경쟁하다’이고 이탈리아어로는 ‘협력하다’라니 절묘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경쟁적인 두 피아니스트도 하나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으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나를 둘이 나누어 연주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로의 움직임을 보고 눈길로 소통하고 상대방의 호흡을 느낄 때 비로소 연주가 가능하다. 신체 접촉도 많다. 하나의 건반에서 움직이는 네 개의 손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교차한다. 가운데 있는 페달을 왼쪽에 있는 사람이 연주하려면 발을 오른쪽 사람 쪽으로 길게 뻗을 수밖에 없다. 감정과 호흡, 몸의 움직임이 조화되지 못하면 환상적인 음악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김희애와 유아인이 함께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장면을 사랑을 나누는 장면처럼 처리한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건반을 만진다(touch)는 서양식 표현도 그런 은밀한 상상을 키웠을 게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듀엣이 청중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이라면 하나의 피아노를 두 명이 연주하는 곡은 연주자들 자신들이 즐기기 위한 음악이다. 음악을 통한 교감과 배려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내 실력이 부족해도 파트너가 잘해주면 덩달아 훌륭한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연주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아노 위의 네 손 연주가 우정의 상징이라 불리는 이유다. 어릴 적 두 손가락만으로 연주했던 젓가락 행진곡이 그렇게 즐거웠던 것도 풍금 앞에서 같이 기뻐하던 정겨운 친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도 하지만 ‘밀회’는 어쩔 수 없는 불륜일 뿐이다. 그것도 남편의 제자와 나누는 사랑이라니. 그런데도 그런 스캔들이 오히려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들 사이의 사랑과 음악에 전염되었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마력이 있으니까. 위험한 사랑이 두렵다면 절대로 피아노에 누군가와 나란히 앉지 않을 일이다. 바로 그렇게 밀애가 시작되는 것이니.

글 민은기 서울대 작곡과 교수,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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