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관계 국회 건의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에 대해 그동안 지니고있던 국민 일반의 체증이 한결 뚫리는 느낌이다. 여야가 시국문제 등에 관해 국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키로 합의한데서 오랜만에 정치의 실재를 보는 것 같다.
주한 미 지상군 철수반대 결의안이야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으례 채택되리라 예상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국에 관한 대 정부건의안과 반국가 활동에 관한 결의안은 분외의 결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시국에 관한 대 정부 건의안이 함축하는 정치적 뜻은 적지 않다.
긴급조치 위반자에 대한 관용·긴급조치의 해제를 위한 전진적 협력·국회의 활성화·대외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있는 대책 강구가 그 건의안의 주요 내용이다. 그중 뭐니뭐니해도 가장 핵심은「긴급조치 위반자」에 관한 대목이다. 그 표현이 상당히 우회적이긴 하지만 요는 구속자들을 석방했으면 하는 건의다.
이 경우에 있어 정부가 국회의 건의를 존중하되 이에 종속되지는 않는다는 말은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여당이 국회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선 이런 건의안이 국회에서 채택된다는 사실은 바로 정부의 의중도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봐야한다.
지난 74년 12월 90회 정기 국회에서도 여야간에 구속자 석방을 건의한다는 원칙이 합의된 적이 있다. 불행히도 그 건의안이 채택되기 전에 다른 문체로 인한 여야의 충돌로 이 합의는 실현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아뭏든 이렇게 여야당이 석방건의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밝은 징조로 중시되었고, 그후 약2개월 후에 2·15석방조치가 단행되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여야의 석방건의 합의와 2·15조치 사이에 국민투표라는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 때문에 여야의 합의와 2·15조치가 직결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국회 건의를 그 자체의 기속력보다 정부·여당의 의중을 드러낸다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금의 상황과 그때의 상황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사태는 비교적 낙관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낙관이 빨리 실현되기 위해선 물론 그 분위기 성숙에 조야를 망라한 국민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 건의를 존중하여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소망스럽다. 여야당도 이왕 어려운 합의를 이룩한 바에는 조속히 좋은 결과가 나타나도록 분위기를 성숙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또 긴급조치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도 그러한 불행한 사태가 빨리 마무리지어질 수 있도록 자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 모든 노력과 자제가 조화를 이뤄 갇힌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대 정부 건의안 내용중 이 구속자 문제를 당면과제라고 한다면 긴급조치 해제를 의한 각계의 전진적 협력, 국회 활성화·정부의 책임있는 대책 동의문제는 상당기간 우리나라 정치가 지향해야 할 목표의 제시로 보인다.
정부와 여야당이 이번 건의안 채택과정에서 보인 정도의 정치력만이라도 계속 발휘한다면 이는 결코 멀지만은 않은 목표일 것이다. 정치의 발전과 민주정치의 성숙을 위한 정치인들의 보다 차원 높은 정치력의 발휘가 요망되는 까닭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